비스타 피플 Vol.3 기획자 박경진


“세번째 비스타피플, 기획자 박경진”


2018년 6월, 저는 언론고시를 관두고 오랜만에 찾아온 비스타에서 리브랜딩을 했습니다. 그때 ‘역시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후 듣게 된 건 기획자 박경진 쌤의 ‘나의 일이 돈이 되는 법(이하 나일돈)’ 2기. 그 강의는 제게 이런 문장으로 마음에 박혔어요.


‘나만의 철학과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함께라면 어디서든 나답게 살 수 있어!’


제가 현실을 보게끔 돕고, 슬로건을 만들고,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위한 뼈대를 만들어주었던 수업이 바로 나일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분은, 바로 기획자 박경진 쌤입니다.

이번 인터뷰 장소는 비스타 사무실이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5시였죠. 경진쌤의 나일돈 3기 수업이 끝난 뒤였습니다. 저도 빨리 끝내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었습니다…만, 뭐랄까 이건 또 혜리 언니나 정은 언니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몰입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끝난 2시간 30분짜리 인터뷰. 저도 처음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사이트를 쭉쭉 뽑아낼 수 있던 그 이야기를 여러분께도 꼭 공유하고 싶어 정리해 봅니다.




기획자 박경진


박경진, 그녀는 누구인가?

▲기획자 박경진 쌤

렌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경진: 기획자 박경진입니다.

렌지: 기획이라고 하면 어떤 일을 기획하는 건가요?

경진: 보통 사업 기획을 한다고 말씀드려요. 회사의 경우에는 경영과 관련된 사업이죠. 내용으로 말씀드리자면 전체적인 경영 프로세스를 볼 수도 있고, 신사업이 될 수도 있고, 주사업이 될 수도 있죠. 개인, 특히 프리랜서나 1인기업 등과 사업 아이템을 의논하기도 해요.

렌지: 그 일을 어떻게 도와주세요?

경진: 제안서나 사업 계획서를 같이 쓰기도 하고요. 컨설팅이나 멘토링 혹은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움을 드리죠.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

렌지: 음… 기획 컨설팅을 한다고 하면 경진쌤이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어떤 건가요? 공고한 브랜드의 철학, 아니면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

경진: 첫 번째는 철학이죠. 기본적으로 기업가를 컨설팅하려고 만나보면 자기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 사업을 왜 하는지, 그 이유를 추구하기 위한 어떤 과정 중에 있는 건지, 제대로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렌지: ‘그 사업을 왜 하려고 하는지?’가 브랜드의 철학인 거잖아요.

경진: 그렇죠. 자기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하면 사업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혹에 휩쓸리기 쉬워요.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려면 철학이 꼭 필요한 거죠. 특히 소기업은 더더욱 대표자의 마인드가 중요해요. '왜 이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기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데, 철학이 부재하면 아무리 좋은 사업 모델도 무의미하죠. 



기획자의 발자국

렌지: 어떻게 처음 회사에서 벗어나 프리랜서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경진: 조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기획에 좀 더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제 철학에 안 맞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거든요. 여태까지 쌓아왔던 경험을 좀 더 제 결에 맞는 비즈니스에 융합해 보고 싶었어요.

또 소셜섹터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는데, 소셜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더 필요하고, 영리기업에는 철학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즉, 소셜섹터와 영리가 조화롭게 융합될 때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이 부분을 융합해서 사업을 기획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렌지: 어떤 과정을 거쳤던 건가요?

경진: 시작은 대학 때였어요. 그때 처음 사회적 경제를 만났죠. 학보사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지역에 있는 마을 신문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당시 IMF가 터져 지역마다 실업자가 급증했고, 마을 단위로 취약계층과 사업을 꾸리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 활동을 신문으로 알리는 게 제가 할 일이었죠. 

그러다가 생협(생활협동조합= 생활필수품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사들여 중간마진 없이 저렴한 가격의 물품을 조합원에게 판매하는 협동조합)에 들어갔어요. 저는 조직홍보를 맡았기 때문에 생협의 정체성, 방향성 등을 철저히 파악했어야 했죠.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에 빠져들게 됐어요.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가난하게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이상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뒤 생협에 자회사가 생겨 공정무역에 참여하게 됐어요. 1년 동안 필리핀을 가게 됐고, 그 안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실물경제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됐죠.

렌지: 필리핀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경진: 공정무역을 하다 보면, 그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키워야 하는 농작물을 생산하는 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무역이 되는 상품에마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요. 그래서 쌀 생산량을 높이는 교육도 하고, 마이크로 크레딧(= 저소득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사업도 하게 됐죠. 그렇게 필리핀에 왔다 갔다 하면서 또 한 4~5년 정도 있다 보니 회사에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사진: 공정무역 일은 더 이상 진행 하지 않지만, 의료봉사를 하며 아직도 연을 이어가고 있는 경진쌤.


렌지: 참 많은 일을 해 오셨네요. 회사에서 나오시고선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경진: 불안했죠. 공정무역 회사에 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해 보기도 하고, 필리핀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인도네시아에 가 온갖 일을 다 벌여보고. ‘난 이렇게 일해서 언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거지? 다양한 일들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한 일을 정리해보고자 대학원에 갔어요.

렌지: 대학원은 왜요?

경진: 그쯤 되니까 일한 경력이 한 10년쯤 됐잖아요. 처음에는 제가 여태까지 너무 복합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에서 공부하면서 알았어요. 여태까지 제가 했던 모든 일이 다 연결선상에 있는 일이었고, 기획 업무를 할 때 다양한 업태를 경험한 게 매우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걸요. 그렇게 학교에 다니다 기획 컨설팅으로 연결이 되고, 스타트업으로 연결이 되고, 그 후에 프리랜서 일이 시작됐죠. 지금과 같은 유형의 일을 한 건 5년 쯤 된 거 같아요.



W기획 연구소 대표 박경진

렌지:  W기획 연구소를 설립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W의 의미는 뭔가요?

경진: 3가지예요. 첫 번째는 Woman이라는 뜻이죠. 여성 기획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제가 그 중 한 명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이 주로 하는 사업, 예를 들면 서비스나 교육 쪽에 조금 더 특화되어 있어요. 여성 사업가의 경우, 여성 기획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남-녀의 표현의 방식이 좀 다르니까요. 그리고 여성 대표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자들처럼 보이더라고요. 가정에서의 역할도 있지만 동시에 회사의 대표이기도 해서, 서로 시간을 맞출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여성 기획자가 필요한 거 같았어요. 아, 하지만 제 고객은 여성만 있는 건 아니에요. 대표는 남성이지만 해당 브랜드에서 여성을 타겟으로 삼거나 혹은 여성 고객을 더 많이 보유한 때도 제가 담당하곤 해요.

렌지: 두 번째는요?

경진: 두 번째는 Worth, 가치라는 의미예요. “철학이 있는 기업(개인)에 가치 있는 기획을”이 제 슬로건이거든요. 기업이니까 경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한편,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일을 기획해 나가고자 하는 거죠. 우리 사회 안에서도 이 기업이 먹고 사는 게 필요하도록 말이죠. 마지막으로 With라는 의미인데 이건 함께 간다는 의미예요. 한 번의 컨설팅으로 딱 끝나는 것보다는 계속 유의미한 일을 함께 해나가는 걸 추구하기 때문이죠.



기획자 X N잡

렌지: 기획만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강사, 멘토, 코치, 컨설턴트 연구원, 에디터… 어떻게 그 일들을 다 하세요?

경진: 저는 반복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강의를 매일 하라고 하면 재미없어서 안 했을 거예요. 강의한걸 토대로 연구도 하고, 글도 쓰고, 섞여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재미를 느껴요. 


▲사진: '나의 일이 돈이되는 법' 특강을 진행 중인 경진쌤.


수강생들을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게 필요한지 즉각적으로 알게 되잖아요.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강의 현장을 찾게 되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전문 강사가 되고 싶진 않아요. 현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연구로 녹이는 일도 좋거든요. 또 컨설팅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요. 강의를 하다 1:多로 소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싶으면, 멘토링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회사와의 만남을 컨설턴트로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또 에디터의 입장으로 만나면 새로워요. 기업에 대한 다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래서 글을 놓지 않게 되는 거 같아요. 그 경험이 다시 강의 자료로 녹아 나오고요. 이 일들이 제게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굉장히 재밌어요.



경진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렌지: 선생님… 이런 질문 곤란하실 수도 있지만 정말 묻고 싶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세요?

경진: (웃음) 회사에서 일하며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해소하는 거 같아요. 제가 어릴 때 프리랜서라는 개념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저는 좀 더 빨리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을 거예요. 어린 시절의 저는 자유를 누릴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는 좀 더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되는 걸 지켜만 봐도 너무 좋고요. 특히 비스타의 2030 젊은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저렇게 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죠. 그래서 제 다음 세대들이 좀 더 잘, 조직이나 틀에서 벗어나 나다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제 공부나 연구도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기획자의 휴식

렌지: 하는 일도 많은 만큼 잘 쉬어주셔야 할 거 같아요. 평소에 어떻게 휴식을 취하세요?

경진: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히 차를 마시곤 해요. 1년에 한 네 번 정도는 가까운 곳에 1박 2일이라도 여행을 가고요. 올해는 지리산과 괴산에 갔어요. 사실 여행을 일부러 찾아가긴 힘들어서 학계 워크숍을 빼놓지 않고 가는 편이에요. 가서도 세미나가 열려 머리를 써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프로그램이 짜여 있으니까 제가 주도적으로 뭘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거기서 휴식감을 느끼죠. 아 그리고 지난 추석쯤에는 하와이에 다녀왔어요.


▲사진: 지난 추석쯤의 하와이와 경진쌤. 넘나 부럽다.


렌지: 와 정말 여행 많이 다니시네요. 부러워요. 저도 여행 가고 싶은데… 그럼, 일 할 때는 어떻게 쉬세요?

경진: 작년에 몸이 아주 아팠어요. 밤을 새우면서 계속 일을 했는데 이렇게 하면 일을 오래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일부러라도 하루에 8시간씩 꼭 자요. 웬만하면 12시에 잠들려고 노력하고요.

렌지: 운동하시는 건 따로 없으세요?

경진: 일주일에 세 번 필라테스를 하러 가요.

렌지: 오… 일주일에 필라테스 두 번 이상 하러 가는 여성 프리랜서가 꼭 되고 싶었는데!

경진: 오전에 미팅이 잡혀버리면 그마저도 간혹 빠지긴 하죠(웃음).



기획자 박경진의 계획

렌지: 앞으로 혹시 특별히 계획 중인 게 있으신가요?

경진: 지금은 하는 프리랜서에 관한 학술지 논문을 쓰고 있어요.

렌지: 아, 그러면 곧 끝나는 거예요?

경진: 아니요, 박사과정이라서 3학기라서 앞으로도 3학기를 더 다녀야 끝이 나죠. 또 다른 계획으로는 다음 년 초부터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려고 하고요.

렌지: 유튜브에는 어떤 내용을 오픈하실 계획인가요?

경진: 기획자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풀고 싶고요, 한편으로는 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간략하게 나눠보고 싶어요.

렌지: ‘W 기획 연구소’의 새 계획도 있나요?

경진: 회사를 설립했으니 본격적으로 회사가 갖춰야 할 틀을 갖추려고 해요. 예를들면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고요. 회사의 영역에서 일을 좀 더 벌려볼 계획이에요. 연구도 회사 안에서 운영하려고 하고요.

렌지: 회사 안에서요? 1인 기업이시잖아요. 좀 더 인력 풀을 넓히신다는 의미인가요?

경진: 아, 주변에 파트너들이 있으니까 사람을 고용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파트너 십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죠. 공부와 연결해서요.






비스타멤버 박경진


비스타는 어떤 곳?

▲사진: '나의 일이 돈이 되는 법'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경진쌤의 모습


렌지: 경진쌤의 기획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비스타는 어떤 곳인가요?

경진: 되게 특이한 곳 같아요. 회사도 아니고, 동아리도 아니고, 공동체도 아닌데 그 안에 에너지가 들락날락하잖아요. 자유로우면서도 공동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랄까요. 여기에서 만난 비스타멤버들의 결도 제가 조직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참 많이 달랐어요.

렌지: 어떻게요?

경진: 다른 곳에서는 ‘힘들어서 일을 그만뒀다’고 하면서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면  “힘들어서 그만뒀다고? 그래서 어디서 일하겠니?”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아, 그럴 수 있죠. 기운 내세요.”라고 하는 위로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렌지: 아, 맞아요. 관용적이고 잘 이해해주고 상황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 거 같아요.

경진: 그리고 정말 예쁜 친구들이 많은 곳이에요. 사실 멤버스데이에 가면 별로 제 또래는 없고, 젊은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꺄르륵거리면서 막 예쁜 말을 하는 걸 보면 정말 힐링이 돼요. 클래스를 해도 그런 분들이 오고요. 정해진 틀에 의해 살기보다 자기의 주관과 방식을 가지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 사진: 2018년 10월 열린 '비스타 멤버스 데이'. 예쁨과 자유가 넘치는 비스타 동산 같다, 히히.


렌지: 맞아요. 저도 저번 멤버스데이에서는 무슨 미술관에 온 것 같았다니까요. 다들 너무 예쁘고. 멋지고. 저마다의 개성으로 빚어진 거 같아서요. 그게 저한테도 많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쌤도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경진: 저도 좀 더 유연해진 거 같아요. 예전에는 프로젝트를 딱 봤을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거 같다 싶으면 “이건 안 될 거 같아요.”라고 단정 지어서 멘토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개인을 멘토링 할 때 ‘그렇게까지 이 사람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잘 경험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됐어요. 물론 삶을 흔들 만한 일이 아니라면요.



경진쌤과 비스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

렌지: 비스타와의 첫 만남은 ‘브랜드유’라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브랜드유를 듣게 되셨어요?

경진: 우연히 인숙쌤의 블로그를 봤어요. 글을 쭉 읽어보다가 그냥 브랜드유를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브랜드유 클래스 인원모집 공지가 떴거든요. 당시 직장생활을 잠시 하면서 독립을 고민하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특강으로 브랜드유를 듣고, 정규과정 수업도 듣게 됐어요. 다음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데, 인숙쌤이 클래스를 진행하다 어느 날 갑자기 “기획자는 어떠세요?”하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그때 저는 제 직업적 흥미를 모두 관통하는 일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렌지: 아, 그렇게 갑자기 나온 것들이 정말 딱 맞을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카피도 그렇고 슬로건도 그렇고.

경진: 맞아요. 근데 사실 그 당시에는 기획자의 길에 대해 100% 확신을 했던 건 아니었고, 그 말을 듣고 제가 여태까지 해 온 일들을 무작정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 안에 정말 많은 기획자의 소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렌지: 아, 정말…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 기획자에 닿게 되신 거군요.

경진: 그때 깨닫고 나서 ‘내가 이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구나.’ 이러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고 블로그에 쓴 글도 있을 거예요(웃음).



비스타 정규 클래스 <나의 일이 돈이 되는 법>

▲사진: 나일돈 포스터


렌지: 지금 나일돈을 3기까지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처음 시작하셨어요?

경진: 인숙쌤이 비스타 내부에서 컨설팅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클래스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약간 반신반의하면서 특강을 1년 동안, 거의 매달 열었던 거 같아요. 오픈 하자마자 하루 만에 마감이 돼서 정말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죠.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파악하려고 사람이 많게 오든 적게 오든 꾸준히 특강을 했어요. 그렇게 업그레이드를 해서 2018년 초에 정규 과정을 개강했죠. 정규 1기도 하루 만에 마감이 되면서, '아, 이 수업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구나' 느꼈죠. 막연히 그냥 봉사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제가 하는 일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것에 확신이 생기는 게 정말 좋았고, 그래서 3기까지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이 클래스를 진행하면서 외부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어요. 같은 강의를 해 달라고. 이 클래스를 정말 많은 사람이 지켜보더라고요.



당신에게 다가올 비스타의 의미

렌지: 경진쌤이 비스타에 계속 머무르게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경진: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때로는 나를 응원해주고, 같은 고민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초기에는 매우 큰 힘이 됐고요. 특히 제가 원래부터 프리랜서였던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조직에 있다가 나오니까 좀 외로움을 겪기도 하는데, 저는 비스타에 있으면서 그게 많이 상쇄된 거 같아요. 잘 맞았던 거 같기도 했고요. 

지금은 거의 여기서 뛰어놀고 있잖아요. 온갖 클래스를 작년부터 같이 하면서 소속되어 있진 않지만, 나의 일터이기도 하고. 너무 마음이 편안한 곳인데, 저한테는 이런 곳이 드물었어요. 경쟁하거나, 정치해야 하거나, 그런 곳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곳이죠. 계산적이지 않고요.

렌지: 맞아요. 멤버스데이만 봐도 정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다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놀았잖아요. 제가 다른 네트워킹 모임에 가면 뭔가 좀 불편함을 많이 느껴서 가기 싫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서 좋아요. 특히 명함을 꼭 줘야 할 거 같고 막 통성명하면서 악수해야 할 거 같은 그 느낌이…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경진: 아, 명함 하니까 진짜 생각난 게, 이번 멤버스데이 때 명함 많이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거든요. 그날 집에 가서 명함을 리멤버 앱에 저장하는데 자동으로 입력이 안 되는 명함이 몇 개 있는 거예요. 정보가 너무 없는 거죠(웃음). 이름이랑 유튜브만 있다든지. 그걸 보고 혼자 되게 빵 터졌어요, 집에서. 그런 생각까지도 다 포용하는 공간 같다는 거죠. 나는 이만큼만 오픈하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건데,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예쁘게 보는 거잖아요. 그런 자유로움이 비스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렌지: 맞아요. 작가분들도 많잖아요. 작가정신이 느껴지는 명함이 많을 수밖에요. (웃음)

경진: 그렇게 부담이 없는 공간인 거 같아요. 나 그대로 올 수 있는 공간이랄까.

렌지: 그럼 어떤 분들이 비스타에 더 많아졌으면 좋을 거 같으세요?

경진: 저는 개인적으로 제 연배가 한두 명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제 연배가 별로 없어요. 제가 젊은 친구들 너무 좋아하고 보고 있으면 재밌고 예쁘지만, 그래도 또래가 한두 명씩은 있어 줘야 제가 심리적 안정감을 더 느끼는 것도 같긴 해요. 그렇다고 또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높아지고 그러는 건 원하진 않고요. 지금과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렌지: 소수의 경진쌤 같은 분들이 들어오고 다수의 젊고 통통 튀는 분들이 들어오면 되겠네요.

경진: 네, 자기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자 하고, 자기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경진쌤과의 인터뷰는 드디어 끝이 났다. 녹음기를 꺼보니 장장 2시간 33분이었는데, 죄송스럽고 감사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사실은 비스타에서 만나는 어른 중에 ‘이분 같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분 중에 한 분이었기에,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거 같다. 경진쌤도 크게 웃으시며 "이런 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스타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얘기하셨다. "더 질문해도 된다"면서.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저녁을 너무 늦게 먹어야 했다. 서로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무시하며 저녁을 먹는데, 또 수다 한마당이 벌어져 1시간여를 더 떠들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하하. 그래도 다음엔 이렇게 길게 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깊이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대략적인 뼈대가 될 질문은 일단 서면으로 받고, 추가 질문을 작성해서 뵙자고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다음에는 그렇게 해야지. 볼륨감이 넘치는 문서작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물어볼 것은 다 물어봤기에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니까 다음 바턴을 이어갈 분은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혹시나 긴 인터뷰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적극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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