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긴 오나 봅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요. 이렇게 기분이 들쑥날쑥할 때는 역시 음악이죠. 지난번 비스타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님의 <오감클래식>에서 들었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들어봅니다. 봄이랑은 안 어울리지만, 전 아직 겨울에서 벗어날 준비가 안 된 거 같단 말이죠. 그렇게 눈이 깔리는 듯한 음이 마음이 내려앉는 걸 느끼며, 3월의 비스타피플 인터뷰는 수민님으로 결정합니다.
수민님은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인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입니다. 서울예고, 서울대 학사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 연주자 과정까지 졸업해, 사실상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다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을 하겠다’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죠.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그녀가 국립외교원, 삼성인력개발원 등에서 기업 강연자로, 예술의전당, 금호 아트홀에서 인터뷰어로, 용인문화재단과 서초여성 가족플라자에서 융합예술 교육자로 활동하게 된 사연, 비스타 피플에서 들어봤습니다.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렌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수민: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입니다. 바이올린 연주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내 공연, 공연 해설 및 연주자 인터뷰, 클래식 음악 칼럼 기고, 그리고 어린이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융합예술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렌지: 제가 비전공자라 그런가 ‘융합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요, 어떤 교육인가요?
수민: 클래식 음악을 듣고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창작의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창작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몰입감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르거든요.
일례로, 최근 용인문화재단에서 ‘오감으로 느껴보는 클래식 음악’이란 수업을 기획해 진행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각자의 감상을 말, 그림, 몸짓, 그리고 공예로 표현하는 커리큘럼이었죠. 이렇게 한 장르만 강조하거나 치우쳐 있지 않기에 ‘융합예술교육’이라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렌지: 성인들부터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강의를 여시네요. 특별히 아이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 뭘까요?
수민: 어리면 어릴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죠. 아이들의 그런 유연한 태도, 자유로운 표현력 등도 성인과 구별되는 점 중 하나이고요.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더 큰 관심이 생길 수 있도록 선입견을 깨뜨리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렌지: 요즘 주로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수민: 주로 사내강연과 융합예술교육, 연중 1~2회의 기획공연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요.
렌지: 사내강연이라고 하면 회사의 사원들과 클래식을 함께 듣고 해설해 주시는 건가요?
수민: 사내강연은 클래식 강연을 원하는 회사에서 적게는 30명, 많게는 300명을 대상으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진행돼요. 제 강연으로 인해 관객들이 클래식에 흥미를 가지고 입문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각색한 해설을 곁들이고 있어요. 연주는 6-8곡 정도 하는 것 같고요. 곡 마다 영감을 받아 직접 그린 그림도 스크린에 띄워 놓고 있습니다. 관객 분들은 해설, 그림, 연주라는 세가지 방법으로 음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세 가지 예술 장르를 융합해 이용하는 것이 제 강연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브랜드 이름도 ‘커넥트아트’죠.
지금은 커넥트아트라는 이름으로 칼럼 기고, 예술교육, 강연활동을 하고 있지만, 곧 성인을 대상으로 한 클래식 동호회, 유투브 채널 개설 등 여러가지 활동을 추가할 거예요.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
렌지: 7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으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해요.
수민: 서울대 재학 중 렛슨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가르치는 애들 모두가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될 확률은 무척 적어.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최고가 되려고 하면 좋을 텐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그때가 대학원 졸업반이었기에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당시 대학원 재학과 동시에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단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 늦기 전에 경험을 확장하고 내 가능성을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오케스트라 생활을 접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2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음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나 자신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고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들었어요.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
렌지: 서울예고를 나오고 서울대 학사 및 석사,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정통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걸어온 수민 님이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주변에서 반대를 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수민: 학교나 오케스트라 등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된 삶을 살길 원하시는 부모님의 기대가 컸어요.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는 저에게 압박을 많이 하셨죠. 저 스스로도 저를 키우시느라 부모님께서 희생하신 많은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서야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았기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설득해야 했죠.
오히려 요즘에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너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라’고 하시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고 있어요. 작년 5월부터 월간 음악잡지 ‘음악저널’에 그림과 음악을 연결시킨 칼럼을 쓰기 시작해 매달 집으로 잡지가 배달되어 오는데, 이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사진: "음악저널"에 그녀가 쓴 칼럼 '구스타브 옆 구스타브'
지금까지 제가 하는 활동들은 강연, 교육, 연주 등 무형의 것들이었는데, 잡지라는 건 많은 이들이 동시에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렌지: 부모님 외 다른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수민: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라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저렇게 지내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나 보자’라며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뒤에서 내뱉는 말, 시선들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죠. 제가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저 묵묵히 목표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해요. ‘멀티 아티스트’로써 정체성을 탄탄히 하고,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나가면 그런 시선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내일을 준비했던 백수
렌지: 유학을 다녀오신 후에 바로 일을 하시진 못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어요?
수민: 저는 정말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어서 20대 중반까지 다른 길은 쳐다도 보지 않고 착실히 공부했어요. 유학까지 다녀오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고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몇 달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아 집에만 있었어요. 자괴감도 들고 우울한 시기였지만 마냥 쳐져있고 싶지 않아서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미술을 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거든요.
△사진: (왼쪽에서부터) 작품명 '슈만 피아노 콰르텟', '너에게 주고 싶었던'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린 그림을 SNS에 올렸어요. 별생각 없이 올린 그림들인데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두가지, 그림과 음악을 접목시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싶었죠.
여기에 글이 합쳐져 제 브랜드 ‘커넥트아트’가 탄생하게 된거고요.
생각해보면 그 때 그림을 그렸던 것이 지금 하는 일의 밑바탕이 되었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치유하는데도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컬러테라피, 즉 색채에서 나온 파장이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실제로 있고요.
렌지: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단단한 수민님을 있게 한 거네요. 요즘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계속 하시는 거죠?
수민: 네, 그림을 그리면서 저 자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참 값지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현실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런 창작의 과정, 몰입의 시간을 소개하고 싶어요. 함께 활동을 해봄으로써 사람들의 지친 하루를 위로하고, 스트레스를 더는데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그래서 곧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모임을 열려고 해요.
제가 해당 곡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을 설명 후 음악을 다 같이 감상하고 각자의 생각을 말로, 글로, 그림으로 풀어내고 공예까지 연결하는 모임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낼 기회가 점점 적어지는 성인들에게 창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공감대를 쌓게 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을 읽으며 토론할 수 있는 시간도 갖고, 실제 공연을 감상하러 가보고, 끝나고는 커피 한잔하면서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가질 거예요. 한마디로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하여 다양한 활동으로 넓혀가는 모임이에요.
우선 확정된 스케쥴은 취향 기반의 모임 공동체 문토에서 성인을 대상으로한 6회차의 클래식 입문 과정, '아는 만큼 들리는' 클래스를 4월 말부터 열 계획입니다. (신청링크: https://munto.kr/product/classic_society_black)
내가 설 자리는 내가 만든다
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민: 대부분 프리랜서의 고민이겠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힘든 부분 중 하나죠. 특히나 주 52시간제를 실행하면서 사내강연 시장도 점점 작아지고 있고요. 그래서 사내강연 하나에만 집중했던 시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 한 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아직 덜 알려졌고, 나를 찾아주는 곳이 적다면 내가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의 제 2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팟캐스트 ‘비밀보장’이 떠올랐어요. 비밀보장은 공중파에서 섭외가 너무 안 들어오자 ‘남이 우릴 찾아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보자!’라는 계기로 탄생했거든요.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저 스스로 기획, 연주, 홍보까지 맡은 ‘이수민의 사계’, ‘예술 속 여성들’, ‘오감클래식’ 등의 공연을 매년 올리고 있어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아 공중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자유롭기에 가능한 활동이죠.
△사진: '이수민의 사계' 포스터
렌지: ‘기획 공연’은 언제부터 하신건가요?
수민: 유학을 다녀온 직후인 2015년부터 기획공연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이수민의 사계’라는 큰 주제를 잡고 봄은 춤, 여름은 사랑, 가을은 색채, 겨울은 이별 등 각 계절마다 키워드 정하고 곡을 선정, 해설, 연주했죠. 각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을 스크린에 띄워 보여드리고요.
△사진: 이수민의 '예술 속 여성들' 포스터
렌지: 그렇게 시작된 기획공연을 꾸준히 열고 계시잖아요. 도움이 되셨나요?
수민: 학창시절에 실력향상을 위해 꾸준히 콩쿨을 나가듯이 2015년부터 매년 쉬지 않고 기획공연을 올렸어요. 기획력을 키우고 여러가지 상황에 대처하며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으려는 저를 한참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제가 하는 일을 보여드리면서 안심시켜 드리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렌지: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기획 공연이 수익성이 충분히 있나요?
수민: 대관료, 반주자 섭외비, 홍보물 인쇄비 등 지출이 많아 아직은 적자를 보고 있어요. 수년 내에 이런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저는 관객들에게 차별화된 컨텐츠로 즐거움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 관객들은 그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게 만들고, 다음 공연에 또 오고 싶게 만들어야겠죠.
△사진: 2018년 연말에 열렸던 이수민의 '오감클래식' 공연 사진
렌지: 이미 백수기간도 탈출하셨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고 매번 돈도 많이 들고 기획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프실 텐데도 앞으로 계속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이렇게 공연을 여는 데는 어떤 수민 님만의 철학이 있는 건가요?
수민: 300 ~400년 전에는 궁정에 귀속되거나 돈 많은 귀족의 의뢰를 받아 작곡, 연주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지만 베토벤 이후로는 달라졌어요. 예술가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표현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인정받게 됐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히려 요즘은 그 전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는 거 같아요. 시대가 불안하다 보니 어딘가 소속되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거죠.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그것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개성과 목소리를 내면서 꾸준히 활동을 선보이다 보면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받게 되고, 성공의 새로운 정의를 쓸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매년 기획공연을 열 계획입니다.
그녀의 영감창고
렌지: 영감을 얻기 위해서 수민님이 자주 들여다보는 매체나 플랫폼이 있을까요?
수민: 세바시, Ted 등을 자주 보고 퍼블리, 브런치도 주의 깊게 봐요. 매일 신문도 정독하는 등 음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들여다보고 관찰해요. 영감이라는 것이 녹즙을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양가 있는 몇 방울의 녹즙을 얻으려면 그의 수십, 수백배의 부피에 해당하는 야채와 과일을 골고루 넣어주어야 하잖아요. 결국 모든 것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올해의 계획
렌지: 올해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수민: 작년에 <오감클래식> 기획공연을 올렸어요. 오감이라는 친숙한 주제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공연이죠. 관객들이 로비에 마련된 오감체험존에서 그림, 향수, 커피 등 오감을 골고루 체험한 후 공연장에 들어와 해당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어요. 올해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오감클래식 시즌2>를 계획 중이에요.
용인문화재단, 서초여성가족플라자 등에서 어린이 융합예술교육도 예정되어 있는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발해보려고 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성인들을 위한 예술 모임을 열어볼 계획도 있고요.
비스타 멤버, 이수민
비스타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
렌지: 어떻게 비스타를 알게 되셨나요?
수민: 2015년 초쯤 페이스북에서 <브랜드유>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마침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답답해하던 시점이었죠. 그때 공고에서 나의 재능을 기반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내용을 보게 되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유가 그녀에게 남긴 것
렌지: 브랜드유 2기 수업을 들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드림브랜딩 수업도 있었는데 왜 브랜드유 수업을 들으셨나요?
수민: 당시 미래에 대해 막막하긴 했어도 클래식 음악을 주 콘텐츠로 삼으리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드림브랜딩 수업보다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특성을 바탕으로 브랜드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브랜드유 수업이 더 잘 맞았어요.
렌지: 브랜드유가 수민님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을지도 궁금해요.
수민: 김인숙 선생님께서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지어주셨어요. 제 2의 이수민을 탄생시켜 주신 것이죠. 그 타이틀이 저에게 큰 방향을 제시했던 것 같아요. 특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시며 내가 무엇을 잘하고, 누굴 만나고 싶고,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등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셨어요. 덕분에 저의 무의식을 밖으로 꺼내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거 같아요.
‘내 안의 예술성 찾기’ 일일클래스
렌지: 비스타에서 ‘내 안의 예술성 찾기’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평을 남겨 주셨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수민: 김인숙 선생님께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2~3회 정도 일일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또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그림을 그리고, 감상을 나누며 쌍방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기에 응했습니다.
비스타, 왜 계속 찾게 되는 걸까?
렌지: 수업을 듣고 난 뒤에도 비스타에서 수민님을 볼 수 있었어요. 비스타의 어떤 점이 수민님을 계속 끌어당기는 걸까요?
수민: 항상 김인숙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정도 많으시고, 어머니처럼 잘 챙겨주시고요. 거기에 자석처럼 끌려서 계속 비스타를 나가게 되는 거 같아요. 특히 프리랜서들끼리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이 성장해나가는 프리랜서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 선생님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 매번 새로운 인맥을 만나는 재미가 있고, 영감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클래식한 느낌의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뭐랄까요, 정제된 느낌이랄까. 오랜 기간 클래식에 몸담아온 수민님이었기에 그랬던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저번 공연에 대한 상세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저는 피드백을 드린다고 드렸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면서 앞으로 또 공연을 여실 테니 그때 다시 보여주시면 제가 더 상세하게 알려드리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네, 다음 공연도 또 갈거예요. 수민님의 인터뷰 만큼이나 느리든 빠르든 분명한 음색으로 흘러가던 그 음악들을 들으러 말이죠.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성인을 위한 음악 모임도 만든다니 기대가 됩니다. 자주자주 만나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 클래식은 좋아하는데, 음... 어떻게 더 공부를 해봐야 할지 약간 막막해서 매번 듣던 것만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음악모임을 빨리 개설하셨으면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예술 쪽에 몸 담고 있는 분들에게도 엘리트의 길을 가다 자기만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나온, 아니 만들어서 나온 수민님의 이야기가 용기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스타 안에서 예술을 하는 작가님들을 떠올리면서 인터뷰를 올립니다.
수민님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은 아래의 홈페이지와 SNS 링크에서 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www.connectart.co.k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sm_violin/
봄이 오긴 오나 봅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요. 이렇게 기분이 들쑥날쑥할 때는 역시 음악이죠. 지난번 비스타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님의 <오감클래식>에서 들었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들어봅니다. 봄이랑은 안 어울리지만, 전 아직 겨울에서 벗어날 준비가 안 된 거 같단 말이죠. 그렇게 눈이 깔리는 듯한 음이 마음이 내려앉는 걸 느끼며, 3월의 비스타피플 인터뷰는 수민님으로 결정합니다.
수민님은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인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입니다. 서울예고, 서울대 학사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 연주자 과정까지 졸업해, 사실상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다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을 하겠다’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죠.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그녀가 국립외교원, 삼성인력개발원 등에서 기업 강연자로, 예술의전당, 금호 아트홀에서 인터뷰어로, 용인문화재단과 서초여성 가족플라자에서 융합예술 교육자로 활동하게 된 사연, 비스타 피플에서 들어봤습니다.
렌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수민: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입니다. 바이올린 연주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내 공연, 공연 해설 및 연주자 인터뷰, 클래식 음악 칼럼 기고, 그리고 어린이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융합예술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렌지: 제가 비전공자라 그런가 ‘융합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요, 어떤 교육인가요?
수민: 클래식 음악을 듣고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창작의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창작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몰입감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르거든요.
일례로, 최근 용인문화재단에서 ‘오감으로 느껴보는 클래식 음악’이란 수업을 기획해 진행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각자의 감상을 말, 그림, 몸짓, 그리고 공예로 표현하는 커리큘럼이었죠. 이렇게 한 장르만 강조하거나 치우쳐 있지 않기에 ‘융합예술교육’이라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렌지: 성인들부터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강의를 여시네요. 특별히 아이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 뭘까요?
수민: 어리면 어릴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죠. 아이들의 그런 유연한 태도, 자유로운 표현력 등도 성인과 구별되는 점 중 하나이고요.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더 큰 관심이 생길 수 있도록 선입견을 깨뜨리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렌지: 요즘 주로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수민: 주로 사내강연과 융합예술교육, 연중 1~2회의 기획공연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요.
렌지: 사내강연이라고 하면 회사의 사원들과 클래식을 함께 듣고 해설해 주시는 건가요?
수민: 사내강연은 클래식 강연을 원하는 회사에서 적게는 30명, 많게는 300명을 대상으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진행돼요. 제 강연으로 인해 관객들이 클래식에 흥미를 가지고 입문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각색한 해설을 곁들이고 있어요. 연주는 6-8곡 정도 하는 것 같고요. 곡 마다 영감을 받아 직접 그린 그림도 스크린에 띄워 놓고 있습니다. 관객 분들은 해설, 그림, 연주라는 세가지 방법으로 음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세 가지 예술 장르를 융합해 이용하는 것이 제 강연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브랜드 이름도 ‘커넥트아트’죠.
지금은 커넥트아트라는 이름으로 칼럼 기고, 예술교육, 강연활동을 하고 있지만, 곧 성인을 대상으로 한 클래식 동호회, 유투브 채널 개설 등 여러가지 활동을 추가할 거예요.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
렌지: 7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으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해요.
수민: 서울대 재학 중 렛슨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가르치는 애들 모두가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될 확률은 무척 적어.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최고가 되려고 하면 좋을 텐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그때가 대학원 졸업반이었기에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당시 대학원 재학과 동시에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단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 늦기 전에 경험을 확장하고 내 가능성을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오케스트라 생활을 접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2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음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나 자신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고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들었어요.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
렌지: 서울예고를 나오고 서울대 학사 및 석사,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정통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걸어온 수민 님이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주변에서 반대를 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수민: 학교나 오케스트라 등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된 삶을 살길 원하시는 부모님의 기대가 컸어요.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는 저에게 압박을 많이 하셨죠. 저 스스로도 저를 키우시느라 부모님께서 희생하신 많은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서야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았기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설득해야 했죠.
오히려 요즘에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너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라’고 하시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고 있어요. 작년 5월부터 월간 음악잡지 ‘음악저널’에 그림과 음악을 연결시킨 칼럼을 쓰기 시작해 매달 집으로 잡지가 배달되어 오는데, 이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사진: "음악저널"에 그녀가 쓴 칼럼 '구스타브 옆 구스타브'
지금까지 제가 하는 활동들은 강연, 교육, 연주 등 무형의 것들이었는데, 잡지라는 건 많은 이들이 동시에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렌지: 부모님 외 다른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수민: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라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저렇게 지내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나 보자’라며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뒤에서 내뱉는 말, 시선들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죠. 제가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저 묵묵히 목표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해요. ‘멀티 아티스트’로써 정체성을 탄탄히 하고,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나가면 그런 시선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내일을 준비했던 백수
렌지: 유학을 다녀오신 후에 바로 일을 하시진 못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어요?
수민: 저는 정말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어서 20대 중반까지 다른 길은 쳐다도 보지 않고 착실히 공부했어요. 유학까지 다녀오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고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몇 달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아 집에만 있었어요. 자괴감도 들고 우울한 시기였지만 마냥 쳐져있고 싶지 않아서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미술을 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거든요.
△사진: (왼쪽에서부터) 작품명 '슈만 피아노 콰르텟', '너에게 주고 싶었던'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린 그림을 SNS에 올렸어요. 별생각 없이 올린 그림들인데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두가지, 그림과 음악을 접목시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싶었죠.
여기에 글이 합쳐져 제 브랜드 ‘커넥트아트’가 탄생하게 된거고요.
생각해보면 그 때 그림을 그렸던 것이 지금 하는 일의 밑바탕이 되었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치유하는데도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컬러테라피, 즉 색채에서 나온 파장이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실제로 있고요.
렌지: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단단한 수민님을 있게 한 거네요. 요즘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계속 하시는 거죠?
수민: 네, 그림을 그리면서 저 자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참 값지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현실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런 창작의 과정, 몰입의 시간을 소개하고 싶어요. 함께 활동을 해봄으로써 사람들의 지친 하루를 위로하고, 스트레스를 더는데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그래서 곧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모임을 열려고 해요.
제가 해당 곡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을 설명 후 음악을 다 같이 감상하고 각자의 생각을 말로, 글로, 그림으로 풀어내고 공예까지 연결하는 모임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낼 기회가 점점 적어지는 성인들에게 창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공감대를 쌓게 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을 읽으며 토론할 수 있는 시간도 갖고, 실제 공연을 감상하러 가보고, 끝나고는 커피 한잔하면서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가질 거예요. 한마디로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하여 다양한 활동으로 넓혀가는 모임이에요.
우선 확정된 스케쥴은 취향 기반의 모임 공동체 문토에서 성인을 대상으로한 6회차의 클래식 입문 과정, '아는 만큼 들리는' 클래스를 4월 말부터 열 계획입니다. (신청링크: https://munto.kr/product/classic_society_black)
내가 설 자리는 내가 만든다
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민: 대부분 프리랜서의 고민이겠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힘든 부분 중 하나죠. 특히나 주 52시간제를 실행하면서 사내강연 시장도 점점 작아지고 있고요. 그래서 사내강연 하나에만 집중했던 시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 한 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아직 덜 알려졌고, 나를 찾아주는 곳이 적다면 내가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의 제 2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팟캐스트 ‘비밀보장’이 떠올랐어요. 비밀보장은 공중파에서 섭외가 너무 안 들어오자 ‘남이 우릴 찾아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보자!’라는 계기로 탄생했거든요.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저 스스로 기획, 연주, 홍보까지 맡은 ‘이수민의 사계’, ‘예술 속 여성들’, ‘오감클래식’ 등의 공연을 매년 올리고 있어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아 공중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자유롭기에 가능한 활동이죠.
△사진: '이수민의 사계' 포스터
렌지: ‘기획 공연’은 언제부터 하신건가요?
수민: 유학을 다녀온 직후인 2015년부터 기획공연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이수민의 사계’라는 큰 주제를 잡고 봄은 춤, 여름은 사랑, 가을은 색채, 겨울은 이별 등 각 계절마다 키워드 정하고 곡을 선정, 해설, 연주했죠. 각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을 스크린에 띄워 보여드리고요.
△사진: 이수민의 '예술 속 여성들' 포스터
렌지: 그렇게 시작된 기획공연을 꾸준히 열고 계시잖아요. 도움이 되셨나요?
수민: 학창시절에 실력향상을 위해 꾸준히 콩쿨을 나가듯이 2015년부터 매년 쉬지 않고 기획공연을 올렸어요. 기획력을 키우고 여러가지 상황에 대처하며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으려는 저를 한참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제가 하는 일을 보여드리면서 안심시켜 드리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렌지: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기획 공연이 수익성이 충분히 있나요?
수민: 대관료, 반주자 섭외비, 홍보물 인쇄비 등 지출이 많아 아직은 적자를 보고 있어요. 수년 내에 이런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저는 관객들에게 차별화된 컨텐츠로 즐거움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 관객들은 그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게 만들고, 다음 공연에 또 오고 싶게 만들어야겠죠.
△사진: 2018년 연말에 열렸던 이수민의 '오감클래식' 공연 사진
렌지: 이미 백수기간도 탈출하셨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고 매번 돈도 많이 들고 기획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프실 텐데도 앞으로 계속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이렇게 공연을 여는 데는 어떤 수민 님만의 철학이 있는 건가요?
수민: 300 ~400년 전에는 궁정에 귀속되거나 돈 많은 귀족의 의뢰를 받아 작곡, 연주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지만 베토벤 이후로는 달라졌어요. 예술가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표현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인정받게 됐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히려 요즘은 그 전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는 거 같아요. 시대가 불안하다 보니 어딘가 소속되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거죠.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그것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개성과 목소리를 내면서 꾸준히 활동을 선보이다 보면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받게 되고, 성공의 새로운 정의를 쓸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매년 기획공연을 열 계획입니다.
그녀의 영감창고
렌지: 영감을 얻기 위해서 수민님이 자주 들여다보는 매체나 플랫폼이 있을까요?
수민: 세바시, Ted 등을 자주 보고 퍼블리, 브런치도 주의 깊게 봐요. 매일 신문도 정독하는 등 음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들여다보고 관찰해요. 영감이라는 것이 녹즙을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양가 있는 몇 방울의 녹즙을 얻으려면 그의 수십, 수백배의 부피에 해당하는 야채와 과일을 골고루 넣어주어야 하잖아요. 결국 모든 것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올해의 계획
렌지: 올해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수민: 작년에 <오감클래식> 기획공연을 올렸어요. 오감이라는 친숙한 주제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공연이죠. 관객들이 로비에 마련된 오감체험존에서 그림, 향수, 커피 등 오감을 골고루 체험한 후 공연장에 들어와 해당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어요. 올해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오감클래식 시즌2>를 계획 중이에요.
용인문화재단, 서초여성가족플라자 등에서 어린이 융합예술교육도 예정되어 있는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발해보려고 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성인들을 위한 예술 모임을 열어볼 계획도 있고요.
비스타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
렌지: 어떻게 비스타를 알게 되셨나요?
수민: 2015년 초쯤 페이스북에서 <브랜드유>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마침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답답해하던 시점이었죠. 그때 공고에서 나의 재능을 기반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내용을 보게 되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유가 그녀에게 남긴 것
렌지: 브랜드유 2기 수업을 들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드림브랜딩 수업도 있었는데 왜 브랜드유 수업을 들으셨나요?
수민: 당시 미래에 대해 막막하긴 했어도 클래식 음악을 주 콘텐츠로 삼으리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드림브랜딩 수업보다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특성을 바탕으로 브랜드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브랜드유 수업이 더 잘 맞았어요.
렌지: 브랜드유가 수민님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을지도 궁금해요.
수민: 김인숙 선생님께서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지어주셨어요. 제 2의 이수민을 탄생시켜 주신 것이죠. 그 타이틀이 저에게 큰 방향을 제시했던 것 같아요. 특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시며 내가 무엇을 잘하고, 누굴 만나고 싶고,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등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셨어요. 덕분에 저의 무의식을 밖으로 꺼내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거 같아요.
‘내 안의 예술성 찾기’ 일일클래스
렌지: 비스타에서 ‘내 안의 예술성 찾기’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평을 남겨 주셨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수민: 김인숙 선생님께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2~3회 정도 일일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또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그림을 그리고, 감상을 나누며 쌍방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기에 응했습니다.
비스타, 왜 계속 찾게 되는 걸까?
렌지: 수업을 듣고 난 뒤에도 비스타에서 수민님을 볼 수 있었어요. 비스타의 어떤 점이 수민님을 계속 끌어당기는 걸까요?
수민: 항상 김인숙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정도 많으시고, 어머니처럼 잘 챙겨주시고요. 거기에 자석처럼 끌려서 계속 비스타를 나가게 되는 거 같아요. 특히 프리랜서들끼리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이 성장해나가는 프리랜서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 선생님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 매번 새로운 인맥을 만나는 재미가 있고, 영감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클래식한 느낌의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뭐랄까요, 정제된 느낌이랄까. 오랜 기간 클래식에 몸담아온 수민님이었기에 그랬던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저번 공연에 대한 상세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저는 피드백을 드린다고 드렸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면서 앞으로 또 공연을 여실 테니 그때 다시 보여주시면 제가 더 상세하게 알려드리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네, 다음 공연도 또 갈거예요. 수민님의 인터뷰 만큼이나 느리든 빠르든 분명한 음색으로 흘러가던 그 음악들을 들으러 말이죠.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성인을 위한 음악 모임도 만든다니 기대가 됩니다. 자주자주 만나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 클래식은 좋아하는데, 음... 어떻게 더 공부를 해봐야 할지 약간 막막해서 매번 듣던 것만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음악모임을 빨리 개설하셨으면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예술 쪽에 몸 담고 있는 분들에게도 엘리트의 길을 가다 자기만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나온, 아니 만들어서 나온 수민님의 이야기가 용기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스타 안에서 예술을 하는 작가님들을 떠올리면서 인터뷰를 올립니다.
수민님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은 아래의 홈페이지와 SNS 링크에서 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www.connectart.co.k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sm_vi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