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는 유튜버多
배희는 유튜버다
논현역의 한적한 카페에서 일상 유튜버 배희님을 만났습니다. 하얀색 레이스 치마와 여성스러운 머리 스타일이 딱 그녀의 유튜브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딱 그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정작 ‘인터뷰 전에는 어떤 일을 하다 오셨냐’는 질문에는 “…어.. 말씀하시는 오늘이 언제부터일까요?”라며 “영상을 편집하다 아침 8시에 잠이 들어서…”라고 머쓱한 듯 덧붙였죠. 그녀는 오늘도 즐겁게 열일을 하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매우 피곤한 얼굴이었을 텐데, 그녀는 (나름) 생기 넘쳐 보였기 때문이죠!
▶사진: 인터뷰에 앞서 당분 섭취를 위해 시킨 치즈케이크를 찍는 배희님
민주: 배희의 취미다(배희의 취미多)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취미를 주로 소개하시나요?
배희: 말 그대로 취미만 소개하는 콘텐츠도 있긴 하지만, 취미보다는 제 일상 공유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저를 소개할 때는 일상 유튜버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Vlog가 콘텐츠를 가장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채널 이름으로 ‘취미’를 강조한 건 이런저런 일상들을 소개하다 보니 결국 다 저의 취미로 연결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카테고리를 나누기도 쉽고요. 브랜드 마케터의 자존심으로서도 그냥 ‘배희의 일상’이라는 흔한 채널 명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는 싫었고요. 모든 걸 포괄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배희의 취미多’라고 이름 지었어요.
▲사진: '배희의 취미多' 유튜브 채널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아, 그러고 보니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Vlog(브이로그)가 참 많아서 신기했어요. 브이로그는 팬층은 좋아하지만, 새로운 구독자를 유입하기는 쉽지 않은 콘텐츠 형식으로 알고 있는데… 브이로그를 많이 올리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배희: 영상 편집 스타일 때문이죠. 유튜브에 많이 있는 정보성 콘텐츠 같은 걸 만들려면 사실 편집하기 위해 자료들, 이른바 영상에 사용할만한 소스들을 인터넷 상에서 찾아야 하거든요. 그런게 많이 번거로웠고, 촬영한 영상 안에 있는 소스들만 이용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게 좋았어요. 그런 측면에서 브이로그는 영상 그 자체가 소스니까, 제가 가장 자주 콘텐츠로 올리게 되는 거 같아요.
▲사진: 그녀가 최근에 올린 브이로그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유튜브 채널에는 6년 전의 영상부터 있었어요. 우크렐레 영상이요.그때부터 유튜브를 하고 계셨던 건가요?
배희: 아, 그건 유튜브를 하려고 올린 건 아니고 우크렐레를 한창 배울 때 실력이 얼마나 느는지 저장해 놓고 싶어서 올렸던 거였어요. 영상 저장창고란 느낌이었죠.
그녀는 정말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2017년 4월이었다며, 그때 처음으로 유튜브 소개 영상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당시 마케터로 일하다 보니 ‘유튜브 붐’에 대해 다루지 않는 팟캐스트가 없었다고 하면서요. ‘지금도 레드오션이라는데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아두고 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 그러면 유튜브를 알아보고 싶어서 시작하신 것도 있는 거네요.
배희: 네, 블로그를 운영하듯이 알아보기 위해서 시작한 거죠. 하겠다고 생각하면 일단 해보고 지난 역사가 흑역사가 될 거 같으면 비공개하고. 저질러놓고 지워버리는 스타일이죠(웃음).
민주: 아주 처음부터 취미를 위주로 일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을 거 같은데… 어땠나요?
배희: 원래는 북튜버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빠른 속도로 책을 읽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시작이 좀 미뤄지기도 했어요. 빨리 시작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결심이 서면 빨리빨리 뭔가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거든요. 맨 처음은 티백리뷰였을 거예요. 저한테 예쁜 티백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사진: 그녀의 첫 리뷰 콘텐츠 주제는 티백이었다...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그렇게 채널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기까지 헤맨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만명은 넘었으니 제 눈에는 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배희: 아니에요. 전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명이 빠지고 그랬어요. 1년 전쯤 인생 펜 소개 영상을 올린 게, 한 2개월 지나서 하루아침에 10만뷰를 찍으면서 구독자 수가 많아져 버려서 지금 만 명이 넘어있는 거죠.
▲사진: 올린지 2개월이 지난 어느 아침
갑자기 10만뷰를 찍은 바로 그 영상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그게 얼떨떨하고 좋았는데, 그 이후에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과 실제 구독자층이 달라져 버렸어요. 처음에 저는 제 일상에 공감할 수 있는 2030대 여성분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운영을 했는데, 그때 10대 친구들이 많이 유입된 거죠. 제 일상영상을 그 전에 하듯이 올리면 구독자 수가 계속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전 늘 불안정한 느낌이랄까요?
민주: 곤혹스러운 일도 많았을 거 같아요.
배희: 그 일이 있고 라이브를 켰는데, 원래는 퇴사 고민 얘기를 듣고 막 같이 고민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내일 저희 학교 운동회”라면서 “’청군 이겨라’ 한 번만 해주세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당황했었거든요. 제가 그런걸 잘 못 하는 성격이라. “처…청군 이겨라아!”그랬죠. 그러니까 또 다른 친구가 자기는 백군이라면서…(웃음). 그뒤로 무서워져서 라이브를 못키고 있어요.
민주: 와. 정말… 그건 생각 밖의 일이네요. 배희님의 고민거리도 거기에 가장 많겠어요.
배희: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을 안정적으로 유입할 수 있게 할지 그게 가장 고민이죠. 배희라는 사람이 좋아서 구독했으면 좋겠어요. 제 인간적인 매력이 많이 부족한 걸까 싶어서…
민주: 배희님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인 거 같아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더 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라이브를 켰을 때 또 배희님이 당황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어서 문제네요.
배희: 또 제가 라이브를 켜게 되면 다른 유튜버 분들도 볼 수 있는데, 그분들중에는 저의 클라이언트도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보기엔 자칫 일 안하고 노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서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민주: 편집일을 하면서 자기 채널을 함께 운영하는 건 정말 쉽지 않네요.
배희: 요즘엔 다행스럽게도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해요.
민주: 다행이에요. 아, 그리고 제가 배희님의 영상과 인스타그램글을 보면 밀려둔 영상을 다 편집했다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걸 많이 봅니다. 영상이 자꾸 딜레이되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요?
배희: 직장 다닐 때는 정말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또 편집일로 생계를 유지하니까 다른 의미로 시간이 없네요. 예전에 회사다닐 때는 새벽 1시에 막 집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편집을 시작해서 3시간 자고 출근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재밌었거든요. 찍어놓은 영상이 너무너무 많았고요. 그래서 한겨울에 매미 소리 나는 영상을 편집해 올리기도 했죠. 밖은 한파인데 매미소리가 들리는 영상을 올렸다면서, 랜선으로 따뜻함을 전달해줘 고맙다고 하는 반응도 있었어요(웃음).
▲사진: 영상을 올린 것은 2018년 1월 30일이었다고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힘들어도 재밌는 건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립니다. 물론 올리기까지 많은 고민이 수반되죠. ‘이미 꽤 지난 시즌의 이야기인데 이제 와 꺼내도 과연 재밌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연초에는 찍어놓은 영상을 2주 이상 묵히지 말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수정해야했죠. 이제는 ‘영상 편집을 미루지 말자’고 말 안하고, 감당할 만큼만 찍기로 했어요. 뭔가 특수한 경우에만 찍는 거로요.
민주: 사실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닌가, 혹시 지금 유튜브 채널로만 생계유지가 가능한가요?
배희: 하하. 당연히 아니죠(웃음). 이번에 들어와서 찍은 책 광고 전에는 한 달에 10만원인가 받았어요. 그걸로 생활할 수는 없죠.
민주: 오, 광고. 앞으로도 계속 받으실 건가요?
▲사진: 책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나는 이제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
배희: 음… 사실 광고 제의는 계속 들어오는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해보고 싶은 건 계속 받을거 같아요. 책 광고 하나 밖에 아직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제 채널이 이거저거 녹이기 참 좋거든요. 전자제품이 들어와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고. 일상에 뭐든 녹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좋아할 만한 거여야 한다는 게 문제죠.
민주: 또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고요!
배희: 네, 그렇죠.
그녀는 그즈음 제 뒤에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다른 쪽으로 옮겨두겠다며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오늘의 인터뷰 역시 그녀의 일상 브이로그에 들어가게 될 모양입니다.
배희는 편집자多
배희는 편집자다
민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려면 영상을 편집할 줄 알아야 했을 텐데, 영상 편집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배희: 제가 원래 그래픽 툴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들어갈 때도 컴퓨터 게임과에서 캐릭터 그래픽작업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혼자 독학을 하게 됐어요. 사실 영상 편집이라는 게 기본기만 알고 나면 부가적인 요소들은 그때그때 튜토리얼을 보고하면 되는 거거든요. 지금도 배워나가는 입장이에요. 제가 넣고 싶은 효과들이 새로 생길 때마다 찾아보고 따라하는 식으로요.
민주: 어느 정도 배운 뒤로는 다 독학으로 하고 계신 거군요. 처음 독학을 하게 되었을 때는 뭘 따라 하셨나요?
배희: 그때 키네틱타이포라고 글씨가 영상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효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떤 분이 키네틱타이포 영상을 만드는 걸 따라 하면서 애프터 이펙트라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갔던 거 같아요. 그게 기초가 되고 거기서 부가적으로 응용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점점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 거죠.
민주: 애프터이펙트가 나왔으니 말인데, 배희님은 어떤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나요?
배희: 사실 이것저것 많이 써보긴 했는데, 어도비 제품들이 가장 좋은 거 같아요. 프리미어랑 방금 말한 애프터이펙트도 거기 속하죠. 물론 애프터이펙트는 말 그대로 영상에 효과를 넣는 것이 좀 더 위주라서 제가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여태까지 써본 거로는 애플에서 나오는 파이널 컷도 써보고 에디우스라는 생소한 프로그램도 써봤고요, 베가스도 써 봤어요.
민주: 다 써보고 나니 왜 어도비가 제일 좋으셨어요?
배희: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 튜토리얼 찾을 때 가장 수월해요. 물론 파이널 컷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하긴 한데…. 뭐라고할까요. 애가 정이 안가는 느낌? 프리미어는 잔고장도 많고 렌더링이 안걸려서 화가 날 때가 많은데, 그게 굉장히 인간적인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냥 손이 잘 가더라고요. 하하.
민주: 그렇군요. 그럼 지금은 어떤 분들의 편집일을 하고 계신가요?
배희: 뷰티유튜버, 헤어디자이너, 쇼핑몰 대표님 세 분의 유트브 채널 영상을 고정으로 받아서 만들고 있고 부가적으로 건건히 들어오는 외주 영상도 받고 있어요.
민주: 한 달에 한 몇 개의 영상을 만들까요?
배희: 4월에는 한 8개 정도? 만들었어요. 제 채널에 올릴 영상까지 하면 10개 정도?
민주: 그 정도면 생계가 유지될 만큼 충분히 벌 수 있을까요?
배희: 예전에는 사실 프리랜서로 돈을 벌어서 살고 있다고 말할 만큼은 못 받았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프리랜서가 늘 그렇듯이 이달에는 이 정도를 벌었지만 다음 달에는 또 상황이 영 다를 수 있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을 얻는 게 어려운 건 제 채널이 좀 더 쑥쑥 크면 그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계속 제 채널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민주: 이건 사실 배희님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본 댓글에 착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편집일만 외주를 받아서 생계를 꾸리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면 배희님은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배희: 프리랜서는 그냥 제 실력이 60%, 운이 40%인 거 같아요. 그 운에는 인맥이 진짜 크게 작용하고요. 내게 일을 주는 사람들이 어릴 적 친구일 수도 있지만 사회에 나갔을 때 얻은 인맥들이 가장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회사를 먼저 다녀보지 않았으면 지금 프리랜서로 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같은 부분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회사생활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러니 일단 대학 졸업하자마자 나한테 바로 일을 던져줄 수 있는 인맥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편집자로 일할 수 있을 만큼의 포트폴리오를 잘 쌓아놓고 있다면 모를까요.
그리고 내가 다른 편집자와는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영상을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그래서 나는 얼만큼 돈을 받아야 하는지 그 기준이 세워져야 할 거 같아요. 사실 편집은 누구나 조금 배우면 할 수 있거든요. 자막 넣고 컷 편집하는 건 어떻게 보면 노가다예요. 하지만 센스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결과물을 보면 매우 큰 차이가 나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능력을 좀 일찍부터 찾으신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해보고, 혼자 공부도 좀 많이 해보고요, 프리랜서 준비를 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녀 역시도 퇴사하고 이사할 때, 당장 생계가 어려워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부터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집 주변 패스트푸드점 알바 자리가 있으면 아르바이트부터 하려고 말이다. 그때 마침 운이 좋게도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운을 잡을 만큼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먹고 사는 게 가능한 지금에 다다르게 되었다면서 타이밍이 딱 맞아서 가능한 일이었던 거 같다고, 지금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면서 웃었다.
▲사진: 당연히 그때의 어려움도 모두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과 다른 사람의 영상을 만드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즐거우세요?
배희: 당연히 제 영상을 만들 때가 더 즐겁죠. 더 편하고. 그래도 다른 분의 영상을 편집하는 건 제 한계에 도전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거 되나요?”라면서 새로운 효과를 요구하실 때, 저는 일단 다 된다고 말 하거든요. 제 영상 만들때는 그렇게까지 파고들진 않는데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만들다보면 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지고 거기서 희열을 느낄 때가 많아요.
민주: 다른 사람의 영상을 편집하면서, 쌓여있는 내 영상을 또 편집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배희: 만약에 일을 할 때 지겨움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건 제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쉬는 시간에 제 영상을 편집하는 게 좋아요. 늘 하고 싶은 게 이만큼 많은데 할 시간은 없으니까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죠. 뭔가 노력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저는 재밌는 걸 하는 거니까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일을 못 해왔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굉장히 재밌고 행복해요.
배희의 커리어 연대기多
배희의 커리어 연대기다
민주: 배희님 전공이 컴퓨터 게임과라고 하셨죠? 왜 들어가게 되신 거예요?
배희: 게임회사에서 일하려고요. 3D 모델링 하려고 들어갔는데… 학원 다니는 애와 안 다니는 저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학원에 가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사진: 그녀가 대학때 만졌던 3D 모델링
민주: 졸업하신 뒤에는 바로 방송국에 들어가신 거예요?
배희: 네, CJ E&M 온게임넷 예능 조연출로 들어갔죠. 영상을 하고 싶었고 전공도 살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시간 중계보다는 예능 쪽이 좀 더 좋을 거 같았고요. 막내 PD여서 작가일도 다 하고 출근할 때 1주일 치씩 속옷을 다 들고 출근했어요. 현장에서 슬레이트도 치고요. 현장 진행하고. 또 짤막한 예고편들 편집도 했죠. 그런데 거기서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전 제가 영상 편집을 정말 못하는 줄 알았어요.
민주: 아, 그래서 다음엔 영상과 좀 거리가 있는 마케팅 회사로 이직하신 거고요.
배희: 게임 마케팅 회사요. 어떻게든 전공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그 안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했죠. 그 뒤에 또 이직해서 3년간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가 작년에 퇴사한 거고요.
민주: 왜 마케터로 관심을 돌리셨어요?
배희: 저는 마케팅이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주: 아니던가요?
배희: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 아닌 건 또 아닌데…(한숨). 수치를 너무 많이 봐야 해서요. 처음 막 들어갔을 때는 보조만 하고 아이디어만 내면 됐는데, 점점 연차가 늘어나면서 이번 연도는 몇 퍼센트가 올라가고, 어떤 방식으로 브랜딩을 하면 그로 인해 수익이 몇 퍼센트 정도 더 날 수 있다든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니까 좀 지치더라고요. 대리, 과장, 팀장 이렇게 되면 CEO 앞에서 이번연도 전략을 그 수치를 기반으로 말해야 하고요. 저는 숫자에 너무 약한데 말이에요.
민주: 확실히 마케터가 그냥 크리에이티브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계속 보여줘야 하더라고요.
배희: 어떻게보면 약간 이게 문과가 아니라 이과가 아닌가 싶을 만큼 수치를 계산하고 있고...
민주: 그렇죠... 그래서 이제는 마케터에서 정말 크리에이터로, 편집자로 전향하셨잖아요. 사실 그 전에도 직장일을 하면서 어느정도 병행하던 일인데 왜 직장을 포기하시고 완전히 프리랜서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셨을까요?
▲사진: 실제로 배희님의 채널에 들어가면 수 많은 직장인 Vlog를 볼 수 있다
배희: 일단 전 직장에서 나온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도 있고, 음, 저는 정말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민주: 직장인 브이로그 남기신 것도 보고 퇴사할 때 남긴 브이로그도 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퇴사하는 날까지 야근하셨으니… 할 만큼 하신 느낌이었어요.
배희: 그 회사는 진짜 할 만큼 했어요. 제가 퇴사를 하기 전까지 이 브랜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제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오래 있기 위해서 제가 헌신하는 만큼 요구도 해 봤어요. 그런데 회사는 들어주질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조직 생활에 잘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았어요.
민주: 어떨 때요?
배희: 그냥 뭔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거 같고, 실행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윗사람으로부터 차단이 될 때 특히 그렇죠. 그리고 단체행동을 해야 할 때요. 저는 MT 같은 것도 싫어하고 밥 먹는 시간에는 그냥 오롯이 좀 쉬고 싶거든요. 내가 못 봤던 것도 보고 싶고. 그런데 자발적 아싸를 하기엔 욕을 먹을 것 같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민주: 앞으로 다시 직장인이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배희: 인생에 절대는 없으니까 장담할 수는 없죠. 예전의 제 꿈은 당당한 커리어우먼이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내년 내후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제안이 들어온다면 연봉 1억이 아닌 다음에야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웃음).
민주: 그럼 내일은 뭐 하실 거예요?
배희: 내일은 새로운 컴퓨터로 일하겠죠. 오늘 아침에도 일하고 왔고.
민주: 프리미어가 렌더링을 자꾸 안먹어서 곤란하시겠네요. 오늘 집에 가시면 새 컴퓨터에 프로그램들도 까셔야 할텐데.
배희: 그것도 일이죠. 그래도 여러 번 하면 뽑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 배희님은 정말 자기 일을 즐겁게 하는 분 같았습니다. 아니, 자기 일 말고 자기가 있는 그 어떤 장소에서든 즐기는 분 같은 느낌이랄까. 저는 그녀에게 결국엔 뭘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게 지금은 영상이고. 먼 훗날의 나는 뭔가 또 다른 답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래서 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늘 탐색하고 있고요. 미래를 준비하는 게 엄청 대단한 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제가 영상 편집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앞일은 정말 알 수 없다고 매번 느끼니까요. 적어도 뭔가 하고 있어서 쌓인 경험치들로 내 미래가 바뀌는 건 맞지만요.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계속하면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지금 영상 만들고.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 영상 편집할 때 외국 드라마를 옆에 틀어놓으면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 편집은 정말 외로운 일이거든요.”
사실 그녀는 아침에 영상을 만들다가 결국 CPU(컴퓨터 중앙 처리 장치, 그냥 중요한 하드웨어라고 생각하면 됨)와 최종적으로 작별을 하고 말았답니다. 작업은 밀렸지. 인터뷰는 해야 하지. 그런데 저녁에 고가의 컴퓨터 장치가 배송될 거라고 하지. 그래서 마음이 참 번잡할 것 같은데도 한 번을 초조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계속 웃으면서 자신은 TMI가 너무 좋다고 말하던 배희님, 너무 두서없이 말해서 어떻게 정리하냐며 저를 걱정해주시던 모습에 참 상냥한 분인 거 같다고 생각했네요. 그 상냥함에 걸맞게 항상 꽃길만, 아니 레이스길, 리본길을 걷길 응원하는 팬이 여기 한 명 더 생겼습니다.
배희님을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SNS링크를 걸어둡니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user/bjh2546
인스타그램: @pear.hee_page https://www.instagram.com/pear.hee_page/
논현역의 한적한 카페에서 일상 유튜버 배희님을 만났습니다. 하얀색 레이스 치마와 여성스러운 머리 스타일이 딱 그녀의 유튜브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딱 그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정작 ‘인터뷰 전에는 어떤 일을 하다 오셨냐’는 질문에는 “…어.. 말씀하시는 오늘이 언제부터일까요?”라며 “영상을 편집하다 아침 8시에 잠이 들어서…”라고 머쓱한 듯 덧붙였죠. 그녀는 오늘도 즐겁게 열일을 하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매우 피곤한 얼굴이었을 텐데, 그녀는 (나름) 생기 넘쳐 보였기 때문이죠!
▶사진: 인터뷰에 앞서 당분 섭취를 위해 시킨 치즈케이크를 찍는 배희님
민주: 배희의 취미다(배희의 취미多)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취미를 주로 소개하시나요?
배희: 말 그대로 취미만 소개하는 콘텐츠도 있긴 하지만, 취미보다는 제 일상 공유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저를 소개할 때는 일상 유튜버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Vlog가 콘텐츠를 가장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채널 이름으로 ‘취미’를 강조한 건 이런저런 일상들을 소개하다 보니 결국 다 저의 취미로 연결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카테고리를 나누기도 쉽고요. 브랜드 마케터의 자존심으로서도 그냥 ‘배희의 일상’이라는 흔한 채널 명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는 싫었고요. 모든 걸 포괄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배희의 취미多’라고 이름 지었어요.
▲사진: '배희의 취미多' 유튜브 채널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아, 그러고 보니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Vlog(브이로그)가 참 많아서 신기했어요. 브이로그는 팬층은 좋아하지만, 새로운 구독자를 유입하기는 쉽지 않은 콘텐츠 형식으로 알고 있는데… 브이로그를 많이 올리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배희: 영상 편집 스타일 때문이죠. 유튜브에 많이 있는 정보성 콘텐츠 같은 걸 만들려면 사실 편집하기 위해 자료들, 이른바 영상에 사용할만한 소스들을 인터넷 상에서 찾아야 하거든요. 그런게 많이 번거로웠고, 촬영한 영상 안에 있는 소스들만 이용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게 좋았어요. 그런 측면에서 브이로그는 영상 그 자체가 소스니까, 제가 가장 자주 콘텐츠로 올리게 되는 거 같아요.
▲사진: 그녀가 최근에 올린 브이로그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유튜브 채널에는 6년 전의 영상부터 있었어요. 우크렐레 영상이요.그때부터 유튜브를 하고 계셨던 건가요?
배희: 아, 그건 유튜브를 하려고 올린 건 아니고 우크렐레를 한창 배울 때 실력이 얼마나 느는지 저장해 놓고 싶어서 올렸던 거였어요. 영상 저장창고란 느낌이었죠.
그녀는 정말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2017년 4월이었다며, 그때 처음으로 유튜브 소개 영상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당시 마케터로 일하다 보니 ‘유튜브 붐’에 대해 다루지 않는 팟캐스트가 없었다고 하면서요. ‘지금도 레드오션이라는데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아두고 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 그러면 유튜브를 알아보고 싶어서 시작하신 것도 있는 거네요.
배희: 네, 블로그를 운영하듯이 알아보기 위해서 시작한 거죠. 하겠다고 생각하면 일단 해보고 지난 역사가 흑역사가 될 거 같으면 비공개하고. 저질러놓고 지워버리는 스타일이죠(웃음).
민주: 아주 처음부터 취미를 위주로 일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을 거 같은데… 어땠나요?
배희: 원래는 북튜버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빠른 속도로 책을 읽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시작이 좀 미뤄지기도 했어요. 빨리 시작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결심이 서면 빨리빨리 뭔가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거든요. 맨 처음은 티백리뷰였을 거예요. 저한테 예쁜 티백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사진: 그녀의 첫 리뷰 콘텐츠 주제는 티백이었다...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그렇게 채널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기까지 헤맨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만명은 넘었으니 제 눈에는 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배희: 아니에요. 전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명이 빠지고 그랬어요. 1년 전쯤 인생 펜 소개 영상을 올린 게, 한 2개월 지나서 하루아침에 10만뷰를 찍으면서 구독자 수가 많아져 버려서 지금 만 명이 넘어있는 거죠.
▲사진: 올린지 2개월이 지난 어느 아침
갑자기 10만뷰를 찍은 바로 그 영상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그게 얼떨떨하고 좋았는데, 그 이후에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과 실제 구독자층이 달라져 버렸어요. 처음에 저는 제 일상에 공감할 수 있는 2030대 여성분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운영을 했는데, 그때 10대 친구들이 많이 유입된 거죠. 제 일상영상을 그 전에 하듯이 올리면 구독자 수가 계속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전 늘 불안정한 느낌이랄까요?
민주: 곤혹스러운 일도 많았을 거 같아요.
배희: 그 일이 있고 라이브를 켰는데, 원래는 퇴사 고민 얘기를 듣고 막 같이 고민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내일 저희 학교 운동회”라면서 “’청군 이겨라’ 한 번만 해주세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당황했었거든요. 제가 그런걸 잘 못 하는 성격이라. “처…청군 이겨라아!”그랬죠. 그러니까 또 다른 친구가 자기는 백군이라면서…(웃음). 그뒤로 무서워져서 라이브를 못키고 있어요.
민주: 와. 정말… 그건 생각 밖의 일이네요. 배희님의 고민거리도 거기에 가장 많겠어요.
배희: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을 안정적으로 유입할 수 있게 할지 그게 가장 고민이죠. 배희라는 사람이 좋아서 구독했으면 좋겠어요. 제 인간적인 매력이 많이 부족한 걸까 싶어서…
민주: 배희님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인 거 같아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더 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라이브를 켰을 때 또 배희님이 당황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어서 문제네요.
배희: 또 제가 라이브를 켜게 되면 다른 유튜버 분들도 볼 수 있는데, 그분들중에는 저의 클라이언트도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보기엔 자칫 일 안하고 노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서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민주: 편집일을 하면서 자기 채널을 함께 운영하는 건 정말 쉽지 않네요.
배희: 요즘엔 다행스럽게도 제가 원하는 구독자층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해요.
민주: 다행이에요. 아, 그리고 제가 배희님의 영상과 인스타그램글을 보면 밀려둔 영상을 다 편집했다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걸 많이 봅니다. 영상이 자꾸 딜레이되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요?
배희: 직장 다닐 때는 정말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또 편집일로 생계를 유지하니까 다른 의미로 시간이 없네요. 예전에 회사다닐 때는 새벽 1시에 막 집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편집을 시작해서 3시간 자고 출근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재밌었거든요. 찍어놓은 영상이 너무너무 많았고요. 그래서 한겨울에 매미 소리 나는 영상을 편집해 올리기도 했죠. 밖은 한파인데 매미소리가 들리는 영상을 올렸다면서, 랜선으로 따뜻함을 전달해줘 고맙다고 하는 반응도 있었어요(웃음).
▲사진: 영상을 올린 것은 2018년 1월 30일이었다고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힘들어도 재밌는 건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립니다. 물론 올리기까지 많은 고민이 수반되죠. ‘이미 꽤 지난 시즌의 이야기인데 이제 와 꺼내도 과연 재밌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연초에는 찍어놓은 영상을 2주 이상 묵히지 말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수정해야했죠. 이제는 ‘영상 편집을 미루지 말자’고 말 안하고, 감당할 만큼만 찍기로 했어요. 뭔가 특수한 경우에만 찍는 거로요.
민주: 사실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닌가, 혹시 지금 유튜브 채널로만 생계유지가 가능한가요?
배희: 하하. 당연히 아니죠(웃음). 이번에 들어와서 찍은 책 광고 전에는 한 달에 10만원인가 받았어요. 그걸로 생활할 수는 없죠.
민주: 오, 광고. 앞으로도 계속 받으실 건가요?
▲사진: 책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나는 이제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
배희: 음… 사실 광고 제의는 계속 들어오는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해보고 싶은 건 계속 받을거 같아요. 책 광고 하나 밖에 아직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제 채널이 이거저거 녹이기 참 좋거든요. 전자제품이 들어와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고. 일상에 뭐든 녹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좋아할 만한 거여야 한다는 게 문제죠.
민주: 또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고요!
배희: 네, 그렇죠.
그녀는 그즈음 제 뒤에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다른 쪽으로 옮겨두겠다며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오늘의 인터뷰 역시 그녀의 일상 브이로그에 들어가게 될 모양입니다.
민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려면 영상을 편집할 줄 알아야 했을 텐데, 영상 편집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배희: 제가 원래 그래픽 툴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들어갈 때도 컴퓨터 게임과에서 캐릭터 그래픽작업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혼자 독학을 하게 됐어요. 사실 영상 편집이라는 게 기본기만 알고 나면 부가적인 요소들은 그때그때 튜토리얼을 보고하면 되는 거거든요. 지금도 배워나가는 입장이에요. 제가 넣고 싶은 효과들이 새로 생길 때마다 찾아보고 따라하는 식으로요.
민주: 어느 정도 배운 뒤로는 다 독학으로 하고 계신 거군요. 처음 독학을 하게 되었을 때는 뭘 따라 하셨나요?
배희: 그때 키네틱타이포라고 글씨가 영상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효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떤 분이 키네틱타이포 영상을 만드는 걸 따라 하면서 애프터 이펙트라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갔던 거 같아요. 그게 기초가 되고 거기서 부가적으로 응용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점점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 거죠.
민주: 애프터이펙트가 나왔으니 말인데, 배희님은 어떤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나요?
배희: 사실 이것저것 많이 써보긴 했는데, 어도비 제품들이 가장 좋은 거 같아요. 프리미어랑 방금 말한 애프터이펙트도 거기 속하죠. 물론 애프터이펙트는 말 그대로 영상에 효과를 넣는 것이 좀 더 위주라서 제가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여태까지 써본 거로는 애플에서 나오는 파이널 컷도 써보고 에디우스라는 생소한 프로그램도 써봤고요, 베가스도 써 봤어요.
민주: 다 써보고 나니 왜 어도비가 제일 좋으셨어요?
배희: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 튜토리얼 찾을 때 가장 수월해요. 물론 파이널 컷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하긴 한데…. 뭐라고할까요. 애가 정이 안가는 느낌? 프리미어는 잔고장도 많고 렌더링이 안걸려서 화가 날 때가 많은데, 그게 굉장히 인간적인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냥 손이 잘 가더라고요. 하하.
민주: 그렇군요. 그럼 지금은 어떤 분들의 편집일을 하고 계신가요?
배희: 뷰티유튜버, 헤어디자이너, 쇼핑몰 대표님 세 분의 유트브 채널 영상을 고정으로 받아서 만들고 있고 부가적으로 건건히 들어오는 외주 영상도 받고 있어요.
민주: 한 달에 한 몇 개의 영상을 만들까요?
배희: 4월에는 한 8개 정도? 만들었어요. 제 채널에 올릴 영상까지 하면 10개 정도?
민주: 그 정도면 생계가 유지될 만큼 충분히 벌 수 있을까요?
배희: 예전에는 사실 프리랜서로 돈을 벌어서 살고 있다고 말할 만큼은 못 받았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프리랜서가 늘 그렇듯이 이달에는 이 정도를 벌었지만 다음 달에는 또 상황이 영 다를 수 있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을 얻는 게 어려운 건 제 채널이 좀 더 쑥쑥 크면 그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계속 제 채널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민주: 이건 사실 배희님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본 댓글에 착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편집일만 외주를 받아서 생계를 꾸리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면 배희님은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배희: 프리랜서는 그냥 제 실력이 60%, 운이 40%인 거 같아요. 그 운에는 인맥이 진짜 크게 작용하고요. 내게 일을 주는 사람들이 어릴 적 친구일 수도 있지만 사회에 나갔을 때 얻은 인맥들이 가장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회사를 먼저 다녀보지 않았으면 지금 프리랜서로 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같은 부분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회사생활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러니 일단 대학 졸업하자마자 나한테 바로 일을 던져줄 수 있는 인맥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편집자로 일할 수 있을 만큼의 포트폴리오를 잘 쌓아놓고 있다면 모를까요.
그리고 내가 다른 편집자와는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영상을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그래서 나는 얼만큼 돈을 받아야 하는지 그 기준이 세워져야 할 거 같아요. 사실 편집은 누구나 조금 배우면 할 수 있거든요. 자막 넣고 컷 편집하는 건 어떻게 보면 노가다예요. 하지만 센스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결과물을 보면 매우 큰 차이가 나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능력을 좀 일찍부터 찾으신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해보고, 혼자 공부도 좀 많이 해보고요, 프리랜서 준비를 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녀 역시도 퇴사하고 이사할 때, 당장 생계가 어려워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부터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집 주변 패스트푸드점 알바 자리가 있으면 아르바이트부터 하려고 말이다. 그때 마침 운이 좋게도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운을 잡을 만큼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먹고 사는 게 가능한 지금에 다다르게 되었다면서 타이밍이 딱 맞아서 가능한 일이었던 거 같다고, 지금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면서 웃었다.
▲사진: 당연히 그때의 어려움도 모두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누르면 새탭에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민주: 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과 다른 사람의 영상을 만드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즐거우세요?
배희: 당연히 제 영상을 만들 때가 더 즐겁죠. 더 편하고. 그래도 다른 분의 영상을 편집하는 건 제 한계에 도전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거 되나요?”라면서 새로운 효과를 요구하실 때, 저는 일단 다 된다고 말 하거든요. 제 영상 만들때는 그렇게까지 파고들진 않는데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만들다보면 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지고 거기서 희열을 느낄 때가 많아요.
민주: 다른 사람의 영상을 편집하면서, 쌓여있는 내 영상을 또 편집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배희: 만약에 일을 할 때 지겨움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건 제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쉬는 시간에 제 영상을 편집하는 게 좋아요. 늘 하고 싶은 게 이만큼 많은데 할 시간은 없으니까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죠. 뭔가 노력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저는 재밌는 걸 하는 거니까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일을 못 해왔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굉장히 재밌고 행복해요.
민주: 배희님 전공이 컴퓨터 게임과라고 하셨죠? 왜 들어가게 되신 거예요?
배희: 게임회사에서 일하려고요. 3D 모델링 하려고 들어갔는데… 학원 다니는 애와 안 다니는 저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학원에 가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사진: 그녀가 대학때 만졌던 3D 모델링
민주: 졸업하신 뒤에는 바로 방송국에 들어가신 거예요?
배희: 네, CJ E&M 온게임넷 예능 조연출로 들어갔죠. 영상을 하고 싶었고 전공도 살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시간 중계보다는 예능 쪽이 좀 더 좋을 거 같았고요. 막내 PD여서 작가일도 다 하고 출근할 때 1주일 치씩 속옷을 다 들고 출근했어요. 현장에서 슬레이트도 치고요. 현장 진행하고. 또 짤막한 예고편들 편집도 했죠. 그런데 거기서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전 제가 영상 편집을 정말 못하는 줄 알았어요.
민주: 아, 그래서 다음엔 영상과 좀 거리가 있는 마케팅 회사로 이직하신 거고요.
배희: 게임 마케팅 회사요. 어떻게든 전공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그 안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했죠. 그 뒤에 또 이직해서 3년간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가 작년에 퇴사한 거고요.
민주: 왜 마케터로 관심을 돌리셨어요?
배희: 저는 마케팅이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주: 아니던가요?
배희: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 아닌 건 또 아닌데…(한숨). 수치를 너무 많이 봐야 해서요. 처음 막 들어갔을 때는 보조만 하고 아이디어만 내면 됐는데, 점점 연차가 늘어나면서 이번 연도는 몇 퍼센트가 올라가고, 어떤 방식으로 브랜딩을 하면 그로 인해 수익이 몇 퍼센트 정도 더 날 수 있다든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니까 좀 지치더라고요. 대리, 과장, 팀장 이렇게 되면 CEO 앞에서 이번연도 전략을 그 수치를 기반으로 말해야 하고요. 저는 숫자에 너무 약한데 말이에요.
민주: 확실히 마케터가 그냥 크리에이티브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계속 보여줘야 하더라고요.
배희: 어떻게보면 약간 이게 문과가 아니라 이과가 아닌가 싶을 만큼 수치를 계산하고 있고...
민주: 그렇죠... 그래서 이제는 마케터에서 정말 크리에이터로, 편집자로 전향하셨잖아요. 사실 그 전에도 직장일을 하면서 어느정도 병행하던 일인데 왜 직장을 포기하시고 완전히 프리랜서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셨을까요?
▲사진: 실제로 배희님의 채널에 들어가면 수 많은 직장인 Vlog를 볼 수 있다
배희: 일단 전 직장에서 나온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도 있고, 음, 저는 정말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민주: 직장인 브이로그 남기신 것도 보고 퇴사할 때 남긴 브이로그도 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퇴사하는 날까지 야근하셨으니… 할 만큼 하신 느낌이었어요.
배희: 그 회사는 진짜 할 만큼 했어요. 제가 퇴사를 하기 전까지 이 브랜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제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오래 있기 위해서 제가 헌신하는 만큼 요구도 해 봤어요. 그런데 회사는 들어주질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조직 생활에 잘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았어요.
민주: 어떨 때요?
배희: 그냥 뭔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거 같고, 실행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윗사람으로부터 차단이 될 때 특히 그렇죠. 그리고 단체행동을 해야 할 때요. 저는 MT 같은 것도 싫어하고 밥 먹는 시간에는 그냥 오롯이 좀 쉬고 싶거든요. 내가 못 봤던 것도 보고 싶고. 그런데 자발적 아싸를 하기엔 욕을 먹을 것 같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민주: 앞으로 다시 직장인이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배희: 인생에 절대는 없으니까 장담할 수는 없죠. 예전의 제 꿈은 당당한 커리어우먼이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내년 내후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제안이 들어온다면 연봉 1억이 아닌 다음에야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웃음).
민주: 그럼 내일은 뭐 하실 거예요?
배희: 내일은 새로운 컴퓨터로 일하겠죠. 오늘 아침에도 일하고 왔고.
민주: 프리미어가 렌더링을 자꾸 안먹어서 곤란하시겠네요. 오늘 집에 가시면 새 컴퓨터에 프로그램들도 까셔야 할텐데.
배희: 그것도 일이죠. 그래도 여러 번 하면 뽑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 배희님은 정말 자기 일을 즐겁게 하는 분 같았습니다. 아니, 자기 일 말고 자기가 있는 그 어떤 장소에서든 즐기는 분 같은 느낌이랄까. 저는 그녀에게 결국엔 뭘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게 지금은 영상이고. 먼 훗날의 나는 뭔가 또 다른 답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래서 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늘 탐색하고 있고요. 미래를 준비하는 게 엄청 대단한 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제가 영상 편집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앞일은 정말 알 수 없다고 매번 느끼니까요. 적어도 뭔가 하고 있어서 쌓인 경험치들로 내 미래가 바뀌는 건 맞지만요.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계속하면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지금 영상 만들고.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 영상 편집할 때 외국 드라마를 옆에 틀어놓으면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 편집은 정말 외로운 일이거든요.”
사실 그녀는 아침에 영상을 만들다가 결국 CPU(컴퓨터 중앙 처리 장치, 그냥 중요한 하드웨어라고 생각하면 됨)와 최종적으로 작별을 하고 말았답니다. 작업은 밀렸지. 인터뷰는 해야 하지. 그런데 저녁에 고가의 컴퓨터 장치가 배송될 거라고 하지. 그래서 마음이 참 번잡할 것 같은데도 한 번을 초조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계속 웃으면서 자신은 TMI가 너무 좋다고 말하던 배희님, 너무 두서없이 말해서 어떻게 정리하냐며 저를 걱정해주시던 모습에 참 상냥한 분인 거 같다고 생각했네요. 그 상냥함에 걸맞게 항상 꽃길만, 아니 레이스길, 리본길을 걷길 응원하는 팬이 여기 한 명 더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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