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타피플은 이런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공감대를 이루거나 자극을 줄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 자기만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즐겁게 자신의 일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영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은 금속공예과로 들어간 사람은 뭘할까요. 자기만의 공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어야 할까요? 대답을 들어보고자 현실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거쳐가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영화공예가, 이보현님을 만났습니다.
영화공예가 이보현의 일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는 공예라는 개념은 계속 가져갈 거지만, 어떤 물질적인 재료를 주된 업으로 삼아서 어필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생각 끝에 작업할 때 주된 영감의 원천이 영화라는 걸 알았어요."
- 영화공예가 이보현
민주: 보현님 블로그에서 ‘생각을 만지는 영화공예가’라고 본인을 소개한 걸 보았어요. 어떻게 그 이름을 붙이게 되었나요? 일단 ‘생각을 만진다’는 것부터 듣고 싶어요.
보현: 말로써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저는 그걸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특히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 있잖아요. 그런 걸 눈앞에 드러내기 위해 뭔가를 계속 만들게 되더라고요. 비가시적인 걸 가시화하는 게 작품을 만드는 목적인 거 같아요.
사진/ 영화 공예가 이보현의 성물 공예 작품
민주: 그래서 생각을 만진다고 하신 거구나. 그럼 영화공예가는요?
보현: 제가 공예를 공부했잖아요. 보통은 공예 앞에 본인이 재료로 삼는 대상을 붙여요. 금속을 재료로 쓰는 사람은 금속공예를, 유리를 재료로 하는 사람은 유리 공예를. 저는 금속공예과를 수료했는데, 과에서는 금속을 기초로 굉장히 다양한 재료를 다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물건을 설명할 때 금속공예라고 말하는 게 좀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는 공예라는 개념은 계속 가져갈 거지만, 어떤 물질적인 재료를 주된 업으로 삼아서 어필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사진/ 금속공예과에서 만들었던 작품
생각 끝에 작업할 때 주된 원천으로 삼는 게 영화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를 공예 앞에 붙임으로써 내가 하는 일의 중심이 잡힌 거 같더라고요. 제가 영화과를 다녔을 때는 영화감독, 영화 스크립터 이런 식으로 영화 뒤에 어떤 직업의 이름이 붙은 형식이어서 더 잘 달라붙는 거 같았어요. 공예와 영화 사이에서 그 공통분모를 잘 살리면 나만의 특색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민주: 영화를 어떤 식으로 공예에 접목하시는 거예요?
보현: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고, 또 금방 좋았던 기억과 감정이 휘발되는 게 아쉬웠어요.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게 특히 좋아서 작업하는 거 같아요.
민주: 그러면 금속 위에 그 영상에서 받은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 건가요?
사진/ 영화를 모티프로 한 공예
보현: 영화를 보면 저한테 와닿은 순간순간의 상징물들이 있더라고요. 그걸 금속에 남기는 거죠. 방식으로만 보면 칠보 작업이에요.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빻은 유릿가루를 올리고. 그런 과정에서 한 번 더 그 순간을 상기시킬 수 있고요. 이게 가마에 들어가면 그려낸 이미지가 금속 위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안착이 되는데, 그 과정이 영화를 볼 때의 스스로와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그리고 액자에 껴서 보관하는 식으로 완성하죠.
민주: 작품만 만드는 게 아니라 클래스도 열고 계시잖아요.
보현: 제가 영화를 보고 공예를 하는 그 과정에서 느꼈던 희열, 나를 찾는 그 느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이색적인 취미를 찾거나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거나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남다른 취미를 알려주고 싶고요. 작업하고 어느 순간부터 제 첫 목표는 공간을 얻어서 클래스를 여는 거였거든요. 사실 이미지를 금속에 남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칠보였어요.
사진/ 공방 아몽뜨에서 열린 영화 공예 클래스에서 ‘알라딘’을 본 수강생이 만든 작품
민주: 블로그에 보니까 지금 공예인 양성 수업 같은 것도 듣고 계시더라고요.
보현: 공예인 양성 수업 중에 공예 에듀케이터 과정이 있어서요. 클래스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좋고. 제가 좋았던 것뿐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좋았던 순간까지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문턱을 좀 더 낮추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 공예 공부를 했던 거 같아요, ‘작품성을 인정받아서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보다는요.
이보현이 걸었던 루트
민주: 그러고 보니까 전공 루트가 신기하더라고요. 처음에 영화과에 지원할 때부터 나중에 공예를 배워야지 생각했을 거 같진 않은데, 왜 학부 때는 영화를 선택하고 대학원 때는 공예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보현: ‘우디 앨런 같은 감독이 되고 싶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딱 처음 든 생각이었어요. 아마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자유로움이 제 마음을 움직인 거 같아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글로, 노래로, 그림으로 교류하는 게 낭만적으로 보였어요. 꿈이 있어 보였죠.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사진/ 보현님이 최애 영화 미드나잇인 파리를 보고 만든 작품
민주: 그런데 왜 영화에서 공예로 가게 된 건가요?
보현: 영화 촬영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제가 굉장히 실행력 넘치고 적극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향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에서 힘을 얻는 편이거든요. 그런 제가 열 명 남짓한 스태프를 통솔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그러다 4학년 때 제가 처음으로 그냥 혼자 작업을 하겠다고 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 영상으로 대상을 받고 생각했죠. 아, 나는 혼자 일해야 더 결과물이 좋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고 싶었어요. 영화보다는 공예가 조금 더 알맞을 거 같더라고요.
민주: 그럼 공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데요?
보현: 영화도 좋아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뭔가 손으로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CA 특활 같은 걸 하면 공예란 공예는 다 했던 거 같아요. 저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하기 싫은 공예를 참 많이 했죠(웃음). 그런 제가 뭔가 취미 활동을 하고 싶던 찰나에 부모님께서 인사동을 지나가다가 ‘칠보가 너랑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배워봐’라는 말을 들었죠. 그래서 학교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문화센터에 가서 칠보를 배웠어요. 음…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작업물을 내야 했기 때문에 뭔가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글링을 하다가 한 선생님을 찾게 되었어요. 그렇게 처음 칠보를 배웠고, 칠보의 바탕이 되는 금속이 궁금해져서 복학하고 4학년 1학기 때부터 금속공예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민주: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공예를 배우다가 결국 취업을 잠깐 하셨어요.
보현: 제가 공부했던 두 개의 전공이 돈이 좀 많이 드는 게 아니었잖아요. 학부 다닐 땐 과외를 해서 돈을 충당했는데, 대학원에 다닐 때는 알바를 할 시간도 안 나더라고요. 제가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창작을 시작했으니까 뭔가 거기에 좀 더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어요. 그게 쌓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취직할만한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제가 예술을 좋아했고 교수님들도 그렇고 부모님도 평론 쪽을 파보는 게 어떻냐고 할 정도로 글 쓰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에디터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민주: 처음에 그렇게 회사에 갔던 건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얘기를 들어보면 결국 ‘현실의 무게’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또다시 회사가 아니라 공방을 차려 자기의 일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현실의 무게보다 더 결정적으로 보현님을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보현: 돈을 벌 수 있긴 했지만 제 작업을 할 시간이 줄어들더라고요. 회사 안에서 글 쓰는 건 좋은 데 다른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몸도 아팠던 거 같아요. 이럴 거면 차라리 알바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아, 그래도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거 같아요.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도 결국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알았으니까요. 좀 더 용기 내고 직진해서 소모해야 하는 것들을 감당할 만큼의 의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를 안 다녔으면 지지부진했을 거 같아요.
당신이 원하는 어떤 예술이든, 아뜰리에 몽마르뜨
/사진: 공방 아몽뜨
민주: 아몽뜨라는 공방을 8월에 여셨어요. 왜 아몽뜨예요?
보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미드나잇 인 파리예요. 파리의 몽마르뜨가 그 배경이죠. 그 영화 안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요. 저는 이 공방을 함께 쓰는 친구와 제가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막 잘하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즐기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그래서 아뜰리에 몽마르뜨라고 지었고, 줄여서 아몽뜨라고 했어요.
민주: 예전부터 공방을 운영하고 싶으셨어요?
보현: 초등학교 고학년쯤인가, 부암동에 있는 만둣국집을 부모님과 먹으러 갔던 게 생각나요. 아빠 차를 타고 오는 데 어느 가게 하나만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거기 어느 젊은 언니 한 명이 자기 공간을 꾸미고 있었어요. 저는 그 모습이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거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그때부터 나도 나중에 내 공간을 가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게 자기 방이었을 수도 있고, 사무실이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당연하게 공방이라고 인지했어요.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죠. 그리고 실제로 대학교 4학년 때 칠보를 배우면서 온갖 공예 공방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기술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때 실질적으로 내 공간을 꾸며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던 거 같아요.
민주: 공방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열고 계신가요?
보현: 지금은 칠보 금속 위에 그림을 그리는 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취미 클래스와 영화 공예 클레스로 나뉘죠. 영화 공예는 하나의 영화 주제를 가지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징물을 정하고 칠보 기법으로 나만의 이미지를 간직하는 수업이에요.
민주: 앞으로 공방에서 더 열어보고 싶은 클래스도 있을 거 같은데요.
보현: 아직까지는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냥 누구나 쉽게 취미를 즐기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요. 클래스를 더 열기보다는 사실 사람들을 더 많이 대하고, 교육 수업도 들어서 언젠가는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 친구들에게도 수업해 보고 싶어요. 여기서 많은 시도를 해보고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대안 공간에서 클래스를 열어보고 싶고요.
프리랜서 에디터 이보현
민주: 프리랜서 에디터로도 일하고 계시잖아요. 왜 에디터였어요?
보현: 저는 이미지로 나타내기 전에 글로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강점을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그래서 한때는 영화 평론가가 되기를 꿈꿨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작가를 하려는 친구들과 제가 대화를 했을 때, 그 친구들이 자기 생각을 툭툭 뱉는 걸 많이 봤죠. 그때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 직장에서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고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푸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민주: 그렇게 해서 보현님은 독자들에게 어떤 글을 펴내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요.
보현: 글에 국한해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제가 삶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을 적합한 미디어로 보여주고 싶은 거 같아요. 제가 존 버거라는 미술 평론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사람은 미술에 대한 평론도 쓰고 사진을 통해 자기가 말하는 바를 표현하기도 해요. 편지를 엮어서 만든 예술 책도 있고요.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적재적소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나의 능력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누군가의 얘기도 전해주고요.
사진/ 보현님의 독립출판물 ‘꿈생꿈사’의 책날개
민주: 영감을 말씀하셨는데, 그럼 어떤 것에 주로 영감을 받는 것 같으세요?
보현: 일상적인 걸 순간적으로 느낄 때가 있어요. 그냥 되게 늘 주변에 당연하게 있던 것일 때도, 다르게 보일 때가요. 그건 그 순간의 내가 물체에 투영된 건데, 그렇게 ‘다르다’고 느끼는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그런 순간이 굉장히 재밌다고 느껴서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영화공예가가 비스타를 만날 때
/사진: 과거 브랜드유를 들을 때의 사진(맨 왼쪽이 이보현)
민주: 보현님이 진로를 고민했을 때 비스타도 도움을 줬을지 궁금해요. 언제쯤 비스타를 찾아오셨던 건가요?
보현: 제가 대학교 4학년쯤에 딱 진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비스타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언니가 알려줬어요.
민주: 그때 당시에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셨던 거예요?
보현: 그냥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르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잘 분간이 안 되더라고요. 판단이 안 서고. 영화도 좋았고 예술도 좋았어요. 글을 쓰는 시나리오작가를 할 건가 싶기도 했고요. 뭔가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께는 뭘 말해도 혼이 날 것 같았고요. 걱정이 많았죠. 너무 가능성과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뭘 선택하든지 다 할 수 있는 시기였잖아요. 그래서 그때 드림블랜딩도 듣고 뒤이어 브랜드유 수업도 들었어요. 그러고도 나중에 리브랜딩을 하고 플랜코스도 새로 들었죠. 플랜 코스는 이번 2월 즈음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공예가라는 제 타이틀을 정했죠.
민주: 비스타에서 수업을 들었던 게 보현님한테 어떻게 도움을 줬던 거 같아요? 그 클래스에서 얻었던 인사이트 같은 게 있었나요?
보현: 우선 인숙쌤을 보면서 정말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퍼스널 브랜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잖아요. 그런데도 뭔가 본인이 남들이 안 갔던 길을 먼저 걷고 있었고, 그게 굉장히 인생 선배 같아 보였던 거죠. 그래서 같이 일을 하면 나도 용기를 가지고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분?
민주: 특히 드림브랜딩에서 그랬겠네요.
보현: 네, 제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옆에서 뭐든 할 수 있으니 제가 정말 뭘 원하는지 생각해보자는 말을 들었던 거거든요. 그때 그런 응원의 말들이 정말 ‘내가 뭐든 할 수 있구나’ 싶었고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이제 찾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주: 분명히 그전까지는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게 되게 막막하게만 느껴졌는데 말 한마디에 그게 되게 당연한 일이고 이제부터 해나가면 그뿐이라는 안도감이 느껴지죠.
보현: 맞아요, 그리고 비스타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잖아요. 일종의 연대감도 느꼈던 거 같아요.
영화공예가 이보현이 만지는 내일
민주: 더 나은 영화공예가가 되고자 하는 노력 들이나 습관이 있다면?
보현: 저 스스로 객관적인 거리를 좀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죠. 주관성이 너무 커지는 상황이 되면 혼자가 되는 거 같아요. 세상은 혼자 사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고도 해요. 그래야 제가 일단 마음먹은 걸 끝까지 해낼 수 있거든요.
민주: 어느 정도는 객관적이려고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선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겠어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있나요?
보현: 매일 책을 읽고 한꺼번에 많이 사려고 해요. 대신 그걸 다 읽을 때까지는 책을 안 사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존에 사둔 책들을 더 빨리 읽고 싶어질 테니까요.
/사진: 그녀가 좋아하는 존버거의 또는 존버거에 관한 책
그리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도 하니까 규칙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해요. 왜냐하면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걸 제가 알면 하루가 끝나갈 때 뭔가 기록될 만한 걸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일을 벌이게 되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는 주간 업무를 올리면서 뭔가 ‘어떤 일’을 계속하게 되는데 우리는 지금 자기의 시간을 알아서 계획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수습되지 못하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매일매일을 구슬 꿰듯이 살고 싶어서 기록을 남기는 중인 거죠.
민주: 그럼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보현: 유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 불어 공부를 하는 중이에요. 자유롭게 예술 공부를 하고 싶어요. 특히 미학을요. 공방 운영을 3~5년 정도 해보고 자금을 모으면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도 공방을 열어 클래스를 해보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예술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고요.
민주: 미학을 공부하고 싶은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보현: 제가 작업을 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요. 왜 사람들이 작업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건지. 왜 예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지.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나에 대한 이해를 더 많이 하게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정말 예술 분야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글을 존버거처럼 풀어내고 싶어요.
보현님에 대해서 더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SNS 링크를 따라가보세요:>
공방 인스타그램: @ateler_monmartre
개인 인스타그램: @b.rosario.p
성물 브랜드: @mullumstudio
블로그: http://blog.naver.com/lipbo
비스타피플은 이런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공감대를 이루거나 자극을 줄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 자기만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즐겁게 자신의 일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영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은 금속공예과로 들어간 사람은 뭘할까요. 자기만의 공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어야 할까요? 대답을 들어보고자 현실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거쳐가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영화공예가, 이보현님을 만났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는 공예라는 개념은 계속 가져갈 거지만, 어떤 물질적인 재료를 주된 업으로 삼아서 어필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생각 끝에 작업할 때 주된 영감의 원천이 영화라는 걸 알았어요."
- 영화공예가 이보현
민주: 보현님 블로그에서 ‘생각을 만지는 영화공예가’라고 본인을 소개한 걸 보았어요. 어떻게 그 이름을 붙이게 되었나요? 일단 ‘생각을 만진다’는 것부터 듣고 싶어요.
보현: 말로써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저는 그걸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특히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 있잖아요. 그런 걸 눈앞에 드러내기 위해 뭔가를 계속 만들게 되더라고요. 비가시적인 걸 가시화하는 게 작품을 만드는 목적인 거 같아요.
사진/ 영화 공예가 이보현의 성물 공예 작품
민주: 그래서 생각을 만진다고 하신 거구나. 그럼 영화공예가는요?
보현: 제가 공예를 공부했잖아요. 보통은 공예 앞에 본인이 재료로 삼는 대상을 붙여요. 금속을 재료로 쓰는 사람은 금속공예를, 유리를 재료로 하는 사람은 유리 공예를. 저는 금속공예과를 수료했는데, 과에서는 금속을 기초로 굉장히 다양한 재료를 다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물건을 설명할 때 금속공예라고 말하는 게 좀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는 공예라는 개념은 계속 가져갈 거지만, 어떤 물질적인 재료를 주된 업으로 삼아서 어필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사진/ 금속공예과에서 만들었던 작품
생각 끝에 작업할 때 주된 원천으로 삼는 게 영화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를 공예 앞에 붙임으로써 내가 하는 일의 중심이 잡힌 거 같더라고요. 제가 영화과를 다녔을 때는 영화감독, 영화 스크립터 이런 식으로 영화 뒤에 어떤 직업의 이름이 붙은 형식이어서 더 잘 달라붙는 거 같았어요. 공예와 영화 사이에서 그 공통분모를 잘 살리면 나만의 특색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민주: 영화를 어떤 식으로 공예에 접목하시는 거예요?
보현: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고, 또 금방 좋았던 기억과 감정이 휘발되는 게 아쉬웠어요.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게 특히 좋아서 작업하는 거 같아요.
민주: 그러면 금속 위에 그 영상에서 받은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 건가요?
사진/ 영화를 모티프로 한 공예
보현: 영화를 보면 저한테 와닿은 순간순간의 상징물들이 있더라고요. 그걸 금속에 남기는 거죠. 방식으로만 보면 칠보 작업이에요.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빻은 유릿가루를 올리고. 그런 과정에서 한 번 더 그 순간을 상기시킬 수 있고요. 이게 가마에 들어가면 그려낸 이미지가 금속 위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안착이 되는데, 그 과정이 영화를 볼 때의 스스로와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그리고 액자에 껴서 보관하는 식으로 완성하죠.
민주: 작품만 만드는 게 아니라 클래스도 열고 계시잖아요.
보현: 제가 영화를 보고 공예를 하는 그 과정에서 느꼈던 희열, 나를 찾는 그 느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이색적인 취미를 찾거나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거나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남다른 취미를 알려주고 싶고요. 작업하고 어느 순간부터 제 첫 목표는 공간을 얻어서 클래스를 여는 거였거든요. 사실 이미지를 금속에 남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칠보였어요.
사진/ 공방 아몽뜨에서 열린 영화 공예 클래스에서 ‘알라딘’을 본 수강생이 만든 작품
민주: 블로그에 보니까 지금 공예인 양성 수업 같은 것도 듣고 계시더라고요.
보현: 공예인 양성 수업 중에 공예 에듀케이터 과정이 있어서요. 클래스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좋고. 제가 좋았던 것뿐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좋았던 순간까지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문턱을 좀 더 낮추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 공예 공부를 했던 거 같아요, ‘작품성을 인정받아서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보다는요.
민주: 그러고 보니까 전공 루트가 신기하더라고요. 처음에 영화과에 지원할 때부터 나중에 공예를 배워야지 생각했을 거 같진 않은데, 왜 학부 때는 영화를 선택하고 대학원 때는 공예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보현: ‘우디 앨런 같은 감독이 되고 싶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딱 처음 든 생각이었어요. 아마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자유로움이 제 마음을 움직인 거 같아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글로, 노래로, 그림으로 교류하는 게 낭만적으로 보였어요. 꿈이 있어 보였죠.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사진/ 보현님이 최애 영화 미드나잇인 파리를 보고 만든 작품
민주: 그런데 왜 영화에서 공예로 가게 된 건가요?
보현: 영화 촬영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제가 굉장히 실행력 넘치고 적극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향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에서 힘을 얻는 편이거든요. 그런 제가 열 명 남짓한 스태프를 통솔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그러다 4학년 때 제가 처음으로 그냥 혼자 작업을 하겠다고 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 영상으로 대상을 받고 생각했죠. 아, 나는 혼자 일해야 더 결과물이 좋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고 싶었어요. 영화보다는 공예가 조금 더 알맞을 거 같더라고요.
민주: 그럼 공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데요?
보현: 영화도 좋아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뭔가 손으로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CA 특활 같은 걸 하면 공예란 공예는 다 했던 거 같아요. 저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하기 싫은 공예를 참 많이 했죠(웃음). 그런 제가 뭔가 취미 활동을 하고 싶던 찰나에 부모님께서 인사동을 지나가다가 ‘칠보가 너랑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배워봐’라는 말을 들었죠. 그래서 학교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문화센터에 가서 칠보를 배웠어요. 음…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작업물을 내야 했기 때문에 뭔가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글링을 하다가 한 선생님을 찾게 되었어요. 그렇게 처음 칠보를 배웠고, 칠보의 바탕이 되는 금속이 궁금해져서 복학하고 4학년 1학기 때부터 금속공예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민주: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공예를 배우다가 결국 취업을 잠깐 하셨어요.
보현: 제가 공부했던 두 개의 전공이 돈이 좀 많이 드는 게 아니었잖아요. 학부 다닐 땐 과외를 해서 돈을 충당했는데, 대학원에 다닐 때는 알바를 할 시간도 안 나더라고요. 제가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창작을 시작했으니까 뭔가 거기에 좀 더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어요. 그게 쌓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취직할만한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제가 예술을 좋아했고 교수님들도 그렇고 부모님도 평론 쪽을 파보는 게 어떻냐고 할 정도로 글 쓰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에디터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민주: 처음에 그렇게 회사에 갔던 건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얘기를 들어보면 결국 ‘현실의 무게’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또다시 회사가 아니라 공방을 차려 자기의 일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현실의 무게보다 더 결정적으로 보현님을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보현: 돈을 벌 수 있긴 했지만 제 작업을 할 시간이 줄어들더라고요. 회사 안에서 글 쓰는 건 좋은 데 다른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몸도 아팠던 거 같아요. 이럴 거면 차라리 알바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아, 그래도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거 같아요.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도 결국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알았으니까요. 좀 더 용기 내고 직진해서 소모해야 하는 것들을 감당할 만큼의 의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를 안 다녔으면 지지부진했을 거 같아요.
/사진: 공방 아몽뜨
민주: 아몽뜨라는 공방을 8월에 여셨어요. 왜 아몽뜨예요?
보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미드나잇 인 파리예요. 파리의 몽마르뜨가 그 배경이죠. 그 영화 안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요. 저는 이 공방을 함께 쓰는 친구와 제가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막 잘하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즐기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그래서 아뜰리에 몽마르뜨라고 지었고, 줄여서 아몽뜨라고 했어요.
민주: 예전부터 공방을 운영하고 싶으셨어요?
보현: 초등학교 고학년쯤인가, 부암동에 있는 만둣국집을 부모님과 먹으러 갔던 게 생각나요. 아빠 차를 타고 오는 데 어느 가게 하나만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거기 어느 젊은 언니 한 명이 자기 공간을 꾸미고 있었어요. 저는 그 모습이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거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그때부터 나도 나중에 내 공간을 가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게 자기 방이었을 수도 있고, 사무실이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당연하게 공방이라고 인지했어요.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죠. 그리고 실제로 대학교 4학년 때 칠보를 배우면서 온갖 공예 공방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기술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때 실질적으로 내 공간을 꾸며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던 거 같아요.
민주: 공방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열고 계신가요?
보현: 지금은 칠보 금속 위에 그림을 그리는 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취미 클래스와 영화 공예 클레스로 나뉘죠. 영화 공예는 하나의 영화 주제를 가지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징물을 정하고 칠보 기법으로 나만의 이미지를 간직하는 수업이에요.
민주: 앞으로 공방에서 더 열어보고 싶은 클래스도 있을 거 같은데요.
보현: 아직까지는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냥 누구나 쉽게 취미를 즐기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요. 클래스를 더 열기보다는 사실 사람들을 더 많이 대하고, 교육 수업도 들어서 언젠가는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 친구들에게도 수업해 보고 싶어요. 여기서 많은 시도를 해보고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대안 공간에서 클래스를 열어보고 싶고요.
민주: 프리랜서 에디터로도 일하고 계시잖아요. 왜 에디터였어요?
보현: 저는 이미지로 나타내기 전에 글로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강점을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그래서 한때는 영화 평론가가 되기를 꿈꿨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작가를 하려는 친구들과 제가 대화를 했을 때, 그 친구들이 자기 생각을 툭툭 뱉는 걸 많이 봤죠. 그때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 직장에서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고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푸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민주: 그렇게 해서 보현님은 독자들에게 어떤 글을 펴내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요.
보현: 글에 국한해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제가 삶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을 적합한 미디어로 보여주고 싶은 거 같아요. 제가 존 버거라는 미술 평론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사람은 미술에 대한 평론도 쓰고 사진을 통해 자기가 말하는 바를 표현하기도 해요. 편지를 엮어서 만든 예술 책도 있고요.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적재적소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나의 능력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누군가의 얘기도 전해주고요.
사진/ 보현님의 독립출판물 ‘꿈생꿈사’의 책날개
민주: 영감을 말씀하셨는데, 그럼 어떤 것에 주로 영감을 받는 것 같으세요?
보현: 일상적인 걸 순간적으로 느낄 때가 있어요. 그냥 되게 늘 주변에 당연하게 있던 것일 때도, 다르게 보일 때가요. 그건 그 순간의 내가 물체에 투영된 건데, 그렇게 ‘다르다’고 느끼는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그런 순간이 굉장히 재밌다고 느껴서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사진: 과거 브랜드유를 들을 때의 사진(맨 왼쪽이 이보현)
민주: 보현님이 진로를 고민했을 때 비스타도 도움을 줬을지 궁금해요. 언제쯤 비스타를 찾아오셨던 건가요?
보현: 제가 대학교 4학년쯤에 딱 진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비스타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언니가 알려줬어요.
민주: 그때 당시에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셨던 거예요?
보현: 그냥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르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잘 분간이 안 되더라고요. 판단이 안 서고. 영화도 좋았고 예술도 좋았어요. 글을 쓰는 시나리오작가를 할 건가 싶기도 했고요. 뭔가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께는 뭘 말해도 혼이 날 것 같았고요. 걱정이 많았죠. 너무 가능성과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뭘 선택하든지 다 할 수 있는 시기였잖아요. 그래서 그때 드림블랜딩도 듣고 뒤이어 브랜드유 수업도 들었어요. 그러고도 나중에 리브랜딩을 하고 플랜코스도 새로 들었죠. 플랜 코스는 이번 2월 즈음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공예가라는 제 타이틀을 정했죠.
민주: 비스타에서 수업을 들었던 게 보현님한테 어떻게 도움을 줬던 거 같아요? 그 클래스에서 얻었던 인사이트 같은 게 있었나요?
보현: 우선 인숙쌤을 보면서 정말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퍼스널 브랜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잖아요. 그런데도 뭔가 본인이 남들이 안 갔던 길을 먼저 걷고 있었고, 그게 굉장히 인생 선배 같아 보였던 거죠. 그래서 같이 일을 하면 나도 용기를 가지고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분?
민주: 특히 드림브랜딩에서 그랬겠네요.
보현: 네, 제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옆에서 뭐든 할 수 있으니 제가 정말 뭘 원하는지 생각해보자는 말을 들었던 거거든요. 그때 그런 응원의 말들이 정말 ‘내가 뭐든 할 수 있구나’ 싶었고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이제 찾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주: 분명히 그전까지는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게 되게 막막하게만 느껴졌는데 말 한마디에 그게 되게 당연한 일이고 이제부터 해나가면 그뿐이라는 안도감이 느껴지죠.
보현: 맞아요, 그리고 비스타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잖아요. 일종의 연대감도 느꼈던 거 같아요.
민주: 더 나은 영화공예가가 되고자 하는 노력 들이나 습관이 있다면?
보현: 저 스스로 객관적인 거리를 좀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죠. 주관성이 너무 커지는 상황이 되면 혼자가 되는 거 같아요. 세상은 혼자 사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고도 해요. 그래야 제가 일단 마음먹은 걸 끝까지 해낼 수 있거든요.
민주: 어느 정도는 객관적이려고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선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겠어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있나요?
보현: 매일 책을 읽고 한꺼번에 많이 사려고 해요. 대신 그걸 다 읽을 때까지는 책을 안 사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존에 사둔 책들을 더 빨리 읽고 싶어질 테니까요.
/사진: 그녀가 좋아하는 존버거의 또는 존버거에 관한 책
그리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도 하니까 규칙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해요. 왜냐하면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걸 제가 알면 하루가 끝나갈 때 뭔가 기록될 만한 걸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일을 벌이게 되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는 주간 업무를 올리면서 뭔가 ‘어떤 일’을 계속하게 되는데 우리는 지금 자기의 시간을 알아서 계획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수습되지 못하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매일매일을 구슬 꿰듯이 살고 싶어서 기록을 남기는 중인 거죠.
민주: 그럼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보현: 유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 불어 공부를 하는 중이에요. 자유롭게 예술 공부를 하고 싶어요. 특히 미학을요. 공방 운영을 3~5년 정도 해보고 자금을 모으면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도 공방을 열어 클래스를 해보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예술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고요.
민주: 미학을 공부하고 싶은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보현: 제가 작업을 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요. 왜 사람들이 작업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건지. 왜 예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지.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나에 대한 이해를 더 많이 하게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정말 예술 분야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글을 존버거처럼 풀어내고 싶어요.
보현님에 대해서 더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SNS 링크를 따라가보세요:>
공방 인스타그램: @ateler_monmartre
개인 인스타그램: @b.rosari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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